월드컵 계절이 돌아왔다. 2002년 8강에서 스페인을 이긴 날, 서울 시내 중심가가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으로 꽉 차고, 차들이 태극기를 꽂고 자동차 경적으로 ‘대한민국’을 울릴 때 나는 시청 앞으로 나갈 용기는 없어 아내와 같이 강남역에 갔었다. 거기도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 손뼉을 부딪치며 젊은이는 버스 위나 중앙분리대 위 등 올라갈 수 있는 데는 모두 올라갔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고함을 지르며 일생 한 번 있을 것 같은 행복을 느꼈다. 내년에도 우리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국민에게 그런 기쁨을 줄까.
선수 못지않게 골수 축구 팬 중에는 특이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은 아예 휴가를 내 미리 목욕재계하고 몇 시간 전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 본인이 관람하면 항상 지기 때문에 녹화를 하며 계속 10분 늦게 보는 사람…. 정말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태세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TV 속의 공을, 그리고 스타디움 내의 모든 관람자가 공을 뚫어지게 본다면 과학적인 관점에서 우리 선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골대를 살짝 빗나가는 공을 4800만 국민의 뜨거운 시선으로 골문 안으로 휘어지게 할 수 있을까? 스타디움을 우리 응원단으로 꽉 채우고 모두 열심히 응원한다면 선수들은 능력의 120%로 뛰게 될까?
물리학에서는 관측 자체가 관측당하는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킨다는 이론과 이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가 있다. 질량이 아주 가벼운 전자가 한 장소에 있음을 관측하기 위해 빛을 보내 반사되는 빛을 보면 이 전자는 있던 위치에서 움직인다. 전자와 부딪힌 빛도 부딪힌 후 파장 길이가 달라진다.
이런 충돌 실험과는 다르지만 한 곳을 떠난 빛이 가까운 두 개의 구멍을 지나 다시 한 점에서 만나는 경우 간섭무늬가 생긴다. 그런데 두 구멍 중 한 곳으로 빛이 지나가는지를 확인하는 경우에는 간섭무늬가 바뀐다. 이 확인을 하지 않으면 원래의 간섭무늬로 관찰된다. 즉 관측당하는 물체가 관측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빛이 전자를 움직이는 현상과는 달리 우리 모두의 눈에서 호랑이 눈의 인광과 같은 빛을 낸다 해도 축구선수가 찬 공은 전자보다 10 뒤에 0이 31개 붙은 숫자 배만큼 무겁기 때문에 공의 움직임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스타디움 내의 관중이 내뿜는 열기로 온도가 상승하거나 습도가 변화하면 공의 운동 방향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우리 응원단이 고함을 지르면 이 소리는 공기를 압축하여 선수의 고막에 도달한다. 이런 소리는 상대 선수를 피곤하게 만든다. 심지어 우리 응원단이 주파수가 아주 낮으면서 큰 소음을 낸다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에서 시도한 것과 같이 상대편 선수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다. 응원단 중 어떤 사람이 동시에 일정 주파수 이상의 고주파로 계속 고함을 지른다면 역시 상대 선수들이 평상심을 잃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또 관중의 응원 열기는 상대 선수의 호르몬 분비 변화로 이어져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우리 선수가 평상시에 갖지 못한 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
응원이 선수나 공의 움직임에 물리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의 바람이 선수의 심리 상태와 호르몬 변화를 통해 원하는 경기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축구공을 뚫어지게 보는 연습과 동시에 여러 주파수의 소음을 내는 연습을 할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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