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비행기 좌석

미국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작년 10월 뉴욕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임직원 해외 출장 때 이코노미석(일반석)을 타도록 엄명을 내렸다. 메릴린치와 JP모간은 비행시간이 3시간 이내인 해외출장 때, UBS는 5시간 이내 비행인 경우 이코노미석을 타도록 했다. 삼성전자도 종전 비즈니스석을 탔던 상무급 임원에게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출장 규정을 바꿨다. 20시간 이상 비행하는 경우엔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으나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는 출장은 거의 없다. 돈 잘 버는 세계적 기업도 경비 절감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차 방한한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이코노미석 항공권을 예약했다. 뉴욕에서 도쿄까지 일본항공(JAL) 이코노미석 비행기표를 끊었으나 JAL이 국가원수 예우 차원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올렸다. 그는 도쿄∼서울 항공편도 이코노미석을 예약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1985년 35세에 대통령에 선출됐다가 2006년 재선에 성공했는데, 21년 동안 평범한 시민으로 살면서 검소함을 몸에 익힌 모양이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일등석) 좌석을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집권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7일 사민당 국민신당 등 연정 파트너 정당의 간사장들과 국회의원 해외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타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 개혁 관련법안에 합의했다. 개혁안은 의원들이 방문국의 대사관 등 재외공관으로부터 차량 지원이나 식사 같은 접대도 받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 국회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장관급 대우를 받아 일등석을 탄다. 공직자로서 공무 중에 일등석을 타는 사람은 장관급 이상과 국회의원 정도다. 게다가 의원들은 해외 출장지에서 현지 대사관의 차량 지원이나 외무 공무원의 길 안내를 받는다. 업무가 아닌 수고를 한 외교관들에게 세금에서 나온 촌지로 답례를 한다. 이런 촌지는 해외 업무추진비라는 명분으로 명세를 밝히지도 않는다. 영국에선 의원들이 쓴 경비의 상세 내용을 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잘 감시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자리다. 하지만 국회의원들 자신들에 관한 예산은 후하기 짝이 없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