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있으니 치료제를 지원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로 다음 날 신종 플루 발생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10일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겠다는 입장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전했다. 신의주와 평양지역에서 신종 플루 확진환자가 9명 발생했다고 하지만 실제 발생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을 겪은 이후 주민의 영양상태 등 건강이 전반적으로 매우 열악해졌고 전염병 피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핵실험과 인권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의 지원 분위기도 냉랭해졌다. 최근 화폐개혁으로 시장기능이 정지되어 의약품을 개인적으로 조달하는 일도 어려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아무 조건 없이 신종 플루 치료제를 북한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매우 뜻 깊고 잘한 일이다. 정부는 50만 명분의 신종 플루 치료제를 지원할 방침인데 인명을 구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북한의 신종 플루가 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면에서도 필요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우리 정부의 지원의사에 대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온 점이 주목된다. 필자는 북측이 신종 플루 발생을 공식 발표한 사실 자체가 국제사회에 치료제 지원요청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라고 본다. 두 달 전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1만 t 지원에 대해서는 북측의 반응이 없던 점과는 대조적이다.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한 공동 협력사업을 우리 정부가 2000년에 제안했을 때 북측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다가 결국 수용한 일이 있다. 당시 말라리아 감염으로 북한 주민의 인명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 플루는 말라리아보다 치사율이 낮지만 북한 주민의 건강상태가 워낙 좋지 않으므로 생각보다 심각한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다.
통일부는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하여 지원량과 품목, 배송경로 등을 실무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실무협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논의가 되겠지만 치료제, 진단시약, 소독제 등의 지원규모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실태 파악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감안할 때 실태 파악을 위한 현장 확인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실태 파악은 우리가 직접 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라도 해야 한다.
사안이 시급한 만큼 절차와 과정에 지나치게 시간을 뺏기다 보면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점도 남북이 협의 과정에서 염두에 두면 좋겠다. 특히 북한은 우리 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인도적 차원의 지원의사를 밝힌 만큼 대규모 인명피해를 가져올지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최대한 협조하는 자세가 옳다고 본다.
남북관계는 그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10월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과 적십자 실무접촉 이후 남북대화는 더는 진전이 없다. 이번 신종 플루 치료제 지원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고 나아가 보건복지 분야의 협력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보건복지 분야의 협력은 인도주의의 실천이자 언제 어디서건 정치적 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남과 북을 이어주는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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