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의 美日동맹을 주목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2일 03시 00분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비행장 이전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갈등이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최악의 경우 58년간 이어져온 미일 동맹관계가 파탄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후텐마 기지 문제는 일본 민주당 정부가 이전 자민당 정부와 미국 사이에 합의했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느냐 마느냐가 핵심이다. 미일 양국은 2006년 후텐마 기지를 2014년까지 오키나와 내 슈워브 미군기지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대등한 미일 관계 구축’을 주창하며 오키나와 밖이나 해외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정권이 했던 합의를 이행하자니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민주당의 정체성이 타격을 받을 것 같고, 파기하자니 미일 관계가 심각하게 뒤틀릴 게 뻔해 하토야마 총리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처지다. 오키나와 내 주민 간의 갈등, 공약 이행을 주장하는 연립정부 내 사민당과의 관계도 변수여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일 관계와 대조적으로 중일 관계는 전에 없이 우호적인 분위기다. 일본 집권 민주당의 최고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국회의원 142명을 포함한 630명의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10일 중국을 방문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 민주당 집권 이후 중일 관계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자와 간사장은 “양국의 친선을 위한 노력을 중국 측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선 일본의 합의 이행이 절박한 상황이다. 후텐마 기지 문제가 합의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오키나와 주둔 미군 해병대 8000명의 괌 이전과 미 본토 일부 부대의 일본 이전, 주일 미군기지 내 병력 이동 등 주일미군 재편 계획 자체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합의 파기는 곧 미일 동맹의 균열을 뜻하기 때문에 미일 동맹 및 한미 동맹을 기본 축으로 지속돼온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동맹전선에서 이탈하는 일본을 대신해 중국을 파트너로 삼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면 남방 3각동맹(미-일-한)과 북방 3각동맹(중-러-북)이 견제하며 안정을 유지해온 체제가 깨지면서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의 안보질서가 재편될 수 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우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반도 유사시 오키나와는 미 공군력과 미군 파병의 1차 발진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후텐마 기지가 오키나와에서 빠져나간다면 유사시 작전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더구나 미일 동맹관계가 파국을 맞는다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에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벗겨질 경우 일본 내에서는 자구책으로 군사력 강화를 위한 ‘보통국가화’에 나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잠재적 안보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 자체의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한미 동맹을 더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 이양을 재고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등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재논의가 불가피해진다.

미일 관계의 악화는 안보 문제에 그치지 않고 양국 간 경제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틈새에 동북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은 지금보다 한층 커질 것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외교적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처할 수 있고, 중국과의 관계는 지금과는 다른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을 두둔하는 중국의 위상이 강해지는 반면에, 한미일 간의 견고한 공조 체제가 이완되거나 깨진다면 북핵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일 두 나라 간의 난제 풀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일 동맹의 위기가 어떤 파고를 일으킬지 예의 주시하면서 상황 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후텐마 기지 문제와 별개로 미일 동맹관계에 악영향을 줄 사안들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 외무성이 현재 조사 중인 과거 미일 간의 ‘미국 핵무기 일본 반입 밀약설’을 비롯해 내년 1월로 끝나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다국적군 함대 급유 지원 연장, 미일 공동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 문제 등이 있다. 하토야마 총리의 탈미(脫美) 성향에다 민주당 핵심부의 급진적인 대미(對美) 노선을 감안하면 어느 것 하나도 해결이 쉽지 않다. 일본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중국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띄우는 것도 미일 관계의 악화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미일이 서로 간의 파국을 자초할 만큼 모험을 할 것인가. 미국은 후텐마 기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태도에 실망감과 불만을 토로하고는 있지만, 될수록 신중하게 접근하고 말을 아끼는 모습도 보인다. 하토야마 총리는 어제 관계 각료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연립여당 대표들과도 만나 의견을 구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조기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미일 합의를 기본으로, 내각으로서 어떻게 이를 변경할지를 미국 측에 전달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미일 양국이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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