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정의로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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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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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중부 클레르몽 외곽 언덕 꼭대기의 연단에 오른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운집한 주교 귀족 시민에게 “이슬람교도와 싸워 성지(예루살렘)를 되찾자”고 호소했다. 이듬해 ‘민중의 십자군’이라 알려진 부대가 원정길에 올랐다. 십자군(crusade) 전쟁은 한때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약탈과 살육의 오명을 남긴 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십자군 운동을 가톨릭교회가 인류에게 저지른 7대 오류의 하나로 인정하며 참회를 했다.

▷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9월 이슬람의 지하드(성전·聖戰)를 언급하면서 이슬람교를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으로 묘사하는 듯한 표현으로 이슬람권의 반발을 샀다. 교황의 발언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서방의 거부감과도 관련이 있다. 지하드는 원래 이교도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한다는 개념이지만, 기독교 신학자들이 이슬람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용어로 변질시켰다고 이슬람 학자들은 주장한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했다가 이슬람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마이클 왈저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원 교수는 저서 ‘정의로운 전쟁과 부정의한 전쟁’(1977)에서 전쟁의 명분(이유)보다는 전쟁터에서의 행동을 정의로운 전쟁과 그렇지 못한 전쟁의 기준으로 삼았다. 다케나카 지하루 일본 릿쿄 대학 법학부 교수는 저서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에서 아예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다”고 냉소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같은 비폭력운동으로 히틀러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로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세계인들이 아프간 전쟁의 당위성을 인정해야만 한국의 파병도 빛난다. 전쟁은 전투뿐 아니라 명분 싸움에서도 이겨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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