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내년에 인천 신항의 진입도로 및 호안 축소공사(2공구) 예산으로 올해 110억 원의 4.2배인 464억 원을 신청했다. 공사 실적이 없는데도 증액된 예산안이 국회 국토해양위를 통과했다. 지난 2년간 배정된 2공구 예산 140억 원 가운데 2공구에 집행된 금액은 700만 원뿐이었고 1공구 등 다른 공사에 43억 원이 전용됐으며 90억 원 이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부가 공사 진척과 상관없이 해마다 공사비를 늘려 청구하면 국회 상임위가 바로잡아야 마땅한데 국토해양위는 그대로 통과시켰다. 소속 입법조사관들이 예산검토 보고서를 통해 ‘2공구 사업의 내년 예산을 삭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는데도 상임위에서 묵살됐다. 예산감시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 사업을 포함해 50여 개를 ‘예산낭비가 우려되는 사업’으로 꼽았다.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위해 새해 예산안을 3조4600억 원 증액했다. 누가 왜 증액을 요청했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의원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증액 로비를 했다는 소식이다. 문자메시지는 지우면 그만이다. 예산 증액 요청을 회의록에 남겨야 한다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지적은 타당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증액된 예산의 옥석을 가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심재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각 부처는 스스로 자수해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예결위는 국민이 위임해준 메스로 군살이 낀 예산을 깎아내야 한다.
지난 10년간 국회의 예산 삭감률은 0.12%였다.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이 실종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우리 국회의 예산심의기간 60일은 프랑스(70일) 영국 및 독일(120일) 미국(240일·예산 편성도 담당)에 비해 지나치게 짧다.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을 제외하면 20여 일뿐이다. 일본도 60일이지만 국정감사 없이 예산만 심의한다. 예결위를 연중 가동하는 개편을 추진할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3월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 횡령 사고가 잇따르자 ‘예산(집행)실명제를 도입하라’고 지시했지만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공직자의 예산 낭비를 ‘범죄’로 본다면 예산안을 잘못 짠 행위도 범죄다. 세금 집행자와 함께 예산안 입안자의 잘못도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예산실명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