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타나는 동북아 각국의 대외정책과 상호관계를 살펴보면 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가 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탈냉전이라고는 하지만 냉전시대 관계구도의 연장선상에서 국가 간 이익의 이합집산이 이뤄졌고 힘의 분포가 비교적 명확했던 20세기 말이나 2000년대 초반과는 전혀 다른, 질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양상들이 도처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화평굴기(和平堀起)의 단계를 넘어 조화세계(調和世界)를 기치로 내건 ‘떠오르는 중국(rising China)’을 다루는 미국의 정책이 더는 협력 혹은 경쟁의 양분법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일본은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미국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등 기존과는 다른 미일 동맹관계를 예고한다. 세계 및 지역 차원에서 꾸준히 영향력 회복 움직임을 보이는 러시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동북아 정세에는 새로운 세기를 헤쳐 나가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으며 미래를 향한 주요 국가의 대전략과 정체성 문제가 개입돼 있다. 예를 들어 미일 관계에서는 과연 어떤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온당한 대접인가에 대한 논쟁이 자리 잡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협력적 태도를 통한 세계질서의 주도’라는 비전을 내건 미국으로서는 동맹국의 역할분담과 기여확대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지만 이를 위해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를 제공할지를 확정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또 다른 도약을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자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지위에 더한, 또 다른 상징성이 필요하다. 현재의 미일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본의 자기 목소리 내기는 동맹의 약화보다는 이와 관련된 적극적 거래를 미국에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중 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약진으로 인한 새로운 지역 및 세계질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운 고민을 계속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에 대한 손익계산에 열심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환시대의 불투명성과 복잡성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이런 와중에 한국과 같은 국가의 전략적 융통성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최근 미일 동맹에서의 일부 파열음이 한국에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미일 동맹의 재편은 반사이익이라는 희망적 사고보다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국도 2000년대 초중반에 경험한 바 있지만 동맹관계의 재편에는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가 수반된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굳건한 동맹으로 인식되던 미일 동맹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는 중기적인 차원에서 한미 동맹에서도 재현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미일 동맹의 재편 과정에서 미국의 지역 안보 공약 변화와 미군 주둔의 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주요 강국 간의 각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타협과 이것이 중소 행위자에게 강요할 소외나 희생 역시 경계해야 한다.
변환시대에는 주요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좌고우면하기보다는 일관성 있는 중장기적 비전과 국가 대전략을 바탕으로 더욱 진취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때로는 불편한 쟁점에 대해 주요 강국과 낯을 붉힐 수 있는 배짱, 그들을 설득하고 매료시킬 수 있는 가치와 정책노선의 발전이 필요하다. 변환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외교·안보의 거버넌스 능력은 이제 한국에도 필수적인 요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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