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식(生殖) 건강증진대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대회를 주관한 박효정 건강과학대 교수는 “2007년 전국의 남녀 대학생 6000명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피임 실천율은 50%, 임신 경험은 4.4%로 나타났다”며 “대학생의 성지식 수준이 너무 낮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 행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6개 대학 ‘생식건강증진 동아리’ 학생 15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모르는 사람과 성 접촉은 하지 마세요” “성 접촉 시에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세요”와 같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화여대 건강과학대학 캠퍼스생식건강증진센터가 주도하는 이 캠페인은 보건복지가족부도 1억 원을 지원했다.
올바른 성지식이 남녀 모두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고, 여성의 건강이 태아의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런 캠페인은 장려할 만하다. 그러나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성의 건강’이 아니라 ‘저출산 극복’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생식 건강은 여성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권리’이지 국가에 생산 가능 인구를 공급하기 위한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란은 또 있었다. 지난달 25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범정부적인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청소년이 임신하면 자퇴를 강요하는 미혼모 차별 정책을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임신으로 자퇴를 강요당하는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교육 기회도 보장하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이제야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임신 청소년의 ‘교육받을 권리’ 보장이 아니라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저출산 대책’이라니…본말(本末)이 한참 전도된 일이다.
저출산은 일자리 부족이나 보육비 및 사교육비 부담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전방위로 뛰는 건 좋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며 가족, 여성, 교육 등 모든 문제에 ‘저출산’을 갖다 붙이는 건 생색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생식 건강권’과 ‘임신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출산율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여성이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