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기업들이 은행 등 금융회사에 맡기는 장단기 저축성 예금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9월 말 현재 예치기간 1년 이상인 장기 저축성예금은 103조7638억 원으로 작년 9월 말보다 31.5% 늘었다. 예치기간 1년 미만의 단기 저축성예금도 1년 전보다 24.2% 증가한 141조7029억 원이었다. 민간기업의 장단기 저축성 예금 245조4667억 원은 내년 정부 예산안 총액(291조8000억 원)의 84.1%에 이를 정도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 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올해 원화 약세 효과와 신규시장 개척, 과감한 경영혁신에 힘입어 선전했다. 연간 순이익이 1조 원을 넘는 ‘1조원 클럽’ 상장회사는 지난해 8개에서 올해는 13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이달 17일 현재 472조5889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57.3% 늘었다.
이처럼 투자여력이 커졌음에도 투자 물꼬는 쉽게 트이지 않는다. 올해 1∼9월 명목 설비투자액은 68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줄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설비투자액은 60조529억 원으로 15.5% 감소했다. 1990년대 중반 40%에 육박했던 국민가처분소득 대비 투자율은 꾸준히 하락해 작년에는 31.2%, 올해 3분기에는 26.7%로 낮아졌다.
기업들이 여유자금이 많아도 투자를 꺼리는 데는 세계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고 환율변동 위험이 크다는 글로벌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악조건에서 그나마 투자 결심을 하면 행정 절차나 지원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해야 할 텐데, 규제를 뚫는 일이 투자 자체보다 힘들고 짜증나다 보니 투자 마인드가 식어버릴 지경이다. 투자 매력과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 분야는 오랜 세월 ‘불허의 벽’에 막혀 있다. 내년 경영과 직결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 연장이나 법인세율 인하 여부,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신설 등에 관한 법률안도 한 해가 다 가도록 오리무중이다.
어렵게 이뤄진 투자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특혜 의혹을 제기하거나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풍토 역시 투자를 위축시킨다. 투자의 물꼬를 트려면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투자의욕을 북돋우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과감하게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의 왕성한 투자야말로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증대, 소비 확대,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