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동원]‘사회적 자본 쌓기’ 고위층 솔선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3일 03시 00분


미국 뉴욕 시를 여행하던 덴마크인 부부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1997년 뉴욕타임스에 소개됐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이 부부는 14개월짜리 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운 채 길거리에 방치한 혐의로 체포됐고 아기는 양육기관에 보내졌다. 덴마크와 미국 간 문화적 차이가 밝혀져 아기의 부모는 석방됐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이유는 북유럽과 미국 사회에서의 신뢰 차이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쇼핑이나 외식 중 어린아이를 길거리에 방치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잘 모르는 사람도 안심하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뉴욕에서는 아이는커녕 개도 마음 놓고 밖에 묶어두지 못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단순비교는 무리지만, 미국은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에서 덴마크보다 앞서 있다. 하지만 뉴욕이 코펜하겐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즉 삶의 질이 높다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 사회적 자본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無形)자산을 말한다.

사회적 자본은 다른 어떤 형태의 자본보다 선진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사회적 비용이 높아 선진국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물적 인적 자본을 갖고 있어도 구성원 간의 관계에 따라서 다른 경제적 사회적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저조한 성장률을 경험한 국가의 공통점으로 사회분열이 지적된다. 이런 이유에서 세계은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본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일수록 치안, 기회 평등, 삶의 만족도의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낮은 사회적 자본이 선진국 진입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중요한 제도의 개혁을 어렵게 하며 지연과 학연 등 폐쇄적 연고주의로 사회갈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0명 중 3명만이 타인을 신뢰한다고 한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물론이고 베트남 같은 개도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 사회의 신뢰수준은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떨어졌다. 1980년대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권위주의가 청산되는 과정에서, 1990년대 후반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리더십과 기능에 대한 신뢰가 감소한 결과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국격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자본을 쌓는 데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증진할 수 있을까. 먼저 정부와 사회의 지도층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적 자본 연구는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사회 전반적인 신뢰 수준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공무원이나 지도층의 청렴도를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 수준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부정부패가 심한 국가일수록 신뢰도가 떨어진다. 사회적 자본 쌓기야말로 지도층의 ‘나부터’가 필요한 분야이다. 오늘날 선진국의 기준은 단순히 국민소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믿을 수 있고 혈연이나 학연에 상관없이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신뢰의 문화 속에 사회적 자본이 풍부해야 경제발전의 비용이 줄어들고 사회적 통합이 가능하며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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