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그들만을 위한 농협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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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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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명칭을 영어로 바꾸는 곳이 많다. 민간기업 중에는 LG SK처럼 오래전부터 개명한 곳이 많지만 최근에는 공기업도 따라가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NH SH LH처럼 엇비슷한 두 자짜리 영문 회사명은 헷갈린다. 한국철도가 코레일(KORAIL)로 변경한 것은 짐작이라도 가지만 인명(人名) 이니셜 같은 회사 이름은 뭐하는 회사인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영문으로 이름 바꾼다고 개혁 잘되나

KT KT&G처럼 이미 몇 해 전에 이름을 바꾼 곳은 익숙해져서 나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 바꾼 곳은 아직 낯설다. 2년 전 NH로 개명한 농협이나 올해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쳐 LH로 바꾼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는 왜 비싼 돈 들여 개명(改名)했는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농협이나 토지주택공사가 민간 기업처럼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굳이 영문자 회사명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문으로 개명한 기업들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꼭 영문 회사명이라야 쇄신이 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NH로 개명한 농협의 개혁은 어떤가.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농민을 위해 일해야 할 농협이 금융사업에서 몇조 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 역대 회장 등 간부들은 정치하는 데 왔다 갔다 하면서 이권에 개입했다”고 농협을 질타했다. 개혁을 서두르라는 주문이었다. 지난주에야 정부가 농협 개혁의 청사진을 담은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과연 농민을 위한 개혁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안은 이렇다. 농협은 현재의 농협중앙회를 2011년 신용과 경제 부문으로 나눈다. 각각 지주회사를 세우고 금융지주회사 밑에 NH은행과 NH보험 같은 금융기관을 두게 된다. 이대로라면 우리금융지주회사처럼 주인 없는 NH금융그룹이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농협이 대형 금융그룹으로 커야만 농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협 사람들에게나 좋은 일이다.

농협은 지난 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의 주도로 진행된 세종증권(현 NH증권) 인수와 자회사인 휴켐스 매각과 관련해 전임 회장이 수십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1988년 농협회장 직선제 이후 선출된 3명의 회장이 모두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됐다. 이번 개혁안이 이런 부패와 비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가.

게다가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사업을 하려면 수조 원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다. 농협을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농협에 국민 세금만 더 퍼붓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개혁에 소극적인 의원들 기억해야

농협 개혁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농협 개혁을 바로 이끌 수 있을까.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국회의원들은 농협에는 약자다. 농협을 개혁하기는커녕 표를 쥔 농협의 눈치를 보는 처지다. 과거에도 농협 개혁은 국회에 가서 농협의 로비와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농협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공기업은 아니지만 공기업 수준의 공공성이 요구되는 법이 정한 단체다. 신용사업에 치중하는 바람에 조합 본연의 역할인 농산물 유통 같은 사업에 소홀했던 농협을 바꾸자는 것이 농협 개혁의 핵심이다. 농협 개혁은 자칫하면 농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농협 직원을 위한 개혁이 되기 쉽다. 농민은 농협 개혁에 소극적인 의원들이 누구인지 잘 기억했다가 다음 총선 때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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