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호]모호한 노동법 개정안, 되레 갈등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목표로 추진했던 노동법 개정이 오히려 노사는 물론이고 전 국민을 극심한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13년간이나 미뤄온 뜨거운 감자, 즉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문제가 법 시행 10여 일을 앞두고도 법대로 시행되는지, 개정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노사정은 이 문제를 지난 13년간 세 차례 유예하면서 복수노조 허용 시 혼란 최소화, 노조 자립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하는 합의문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둔 협상과정에서 노사정이 보여준 태도는 그동안의 유예기간이 대책 없는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대화의 장에서 민노총이 빠져나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4일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 등 3자가 양보와 타협으로 어렵게 합의안을 만들었다.

노사정 합의는 한나라당의 노동법개정안 제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다자회의 진행 등 입법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변질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한국노총의 요구를 수용하여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를 노조전임자의 타임오프(유급 근로시간 면제) 범위에 추가함으로써 노사정 합의와 다른 내용의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법 시행을 불과 10일 남겨둔 22일에야 여야, 민노총까지 포함한 다자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권과 노동계, 경영계의 추가 이견이 크게 표출되면서 노사정 합의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법 시행 목전에서야 정치권이 나서 변함없는 당사자의 견해를 듣고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낼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설령 다자회의를 통해 합의가 이루어져 노동법을 개정해도 내용이 모호하여 오히려 산업현장의 노사가 혼란에 빠질 것이란 점이다.

한나라당은 노조전임자의 타임오프 범위에 추가한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남겨뒀다. 이 때문에 향후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또 한 차례 노사정 간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해졌다. 노사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들어 문제를 풀기보다 문제를 심화시키는 꼴이 되었다.

산업계는 한나라당 안에 대해 오히려 전임자 임금지급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하고, 노사정 합의의 한 주체인 노동부조차도 한나라당 개정안은 합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했다는 한나라당의 개정안도 이러할진대 국회 환노위가 다자회의를 통해 타협과 절충을 한다 해도 합의안의 내용은 더 모호하거나 유사법률 간 상충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애매모호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법률은 분쟁과 갈등을 조정·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과 분열을 조장한다. 공무원노조법 제10조(단체협약의 효력)와 같이 조항에 상반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노사제도가 선진화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권의 불합리한 정치논리의 책임이 크다. 지난 13년 동안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유예돼 온 이유도 정치권이 기득권을 가진 목소리 큰 집단의 반발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근로자의 요구는 가볍게 생각한 데 있다.

법률의 목적은 갈등과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에 있다. 장래의 갈등을 잉태한 법을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현재의 법을 시행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갈등을 유발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 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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