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시작한 올 한 해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희망과 갈등이 교차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2일 ‘동아일보에 바란다’라는 주제로 회의를 열고 올 한 해 동아일보의 보도를 점검했으며 내년 창간 90주년을 계기로 더욱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정기적 수요조사… “독자가 뭘 원하나” 과학적 접근 팩트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기사작법 필요 서울 용산 참사, 세종시 원안 수정,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으로 고조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나영이 사건, 강호순 사건,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 같은 사건 사고는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슬픔과 충격을 안겨 줬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된 경제 회복,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첫 우주 발사체 나로호의 ‘절반의 성공’, ‘피겨 여왕’ 김연아의 눈부신 활약 등은 우리 사회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자부심을 심어 줬다. 이런 다양한 모습은 동아일보에 어떻게 투영됐을까. 새해에는 동아일보가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나야 할까.
―늘 그랬듯이 올해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동아일보의 보도에 잘잘못이 있었을 겁니다. 오늘은 세 분 독자위원께서 동아일보 독자로서 창간 90주년을 맞는 동아일보에 ‘이렇게 했으면’ 또는 ‘이런 것들을 해 달라’ 하는 제안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성진 위원장=올해 동아일보는 전통 보수 정론지로서 균형 있는 보도와 논평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합니다. 예컨대 용산 참사, 철도 파업 같은 갈등 요인이 정쟁화되는 것을 피하고 원칙에 따른 대응을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다문화 가정 문제, 탈북자 정착 문제, 의료 영리 법인 문제 등의 심층 보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출범 1년 만에 이전 정부보다 직원 수가 늘어난 청와대에 대한 문제 제기, 친서민도 좋지만 문제는 빈 곳간이라는 기획 보도, 녹색 사업을 둘러싼 부처 간의 엇박자 정책 비판 등에선 동아일보의 균형 있는 보도 태도가 잘 나타났습니다.
▽이민웅 위원=올해를 회고할 때 성공적인 금융위기 극복 과정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심어 준 동아일보의 보도는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모두가 공포를 느낄 때 동아일보는 지나친 불안은 위기를 더 키운다며 이성적이면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논조로 보도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기의 본질을 파헤치고 극복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산업 현장을 찾아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전한 시리즈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기획으로 특히 돋보였습니다.
▽윤영철 위원=언론이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부풀렸다거나, 심지어 갈등의 핵심 주체라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입니다. 동아일보는 합리적인 해석과 해설로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 뭔지 알 수 있게 해 줬다고 봅니다. 갈등이 문제이긴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독자들에게 심어 줬습니다. 여러 이슈에서 나름의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는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언론 전체적으로는 인터넷에 독자를 뺏기는 상황에서 빠지기 쉬운 선정주의의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정치적 성향을 넘어 정파적 성향을 보이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과정에서 경제적 산업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자사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합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나영이 사건, 강호순 사건, 연예인 자살 사건 등을 보도하면서 국민의 격앙된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았는지, 차분하게 사회적 공론을 형성했는지 등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혁명 시대가 다가왔는데 그에 걸맞은 콘텐츠 발굴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창간 90주년을 맞는 내년엔 의제 설정 기능 및 심층 보도의 강화 등을 절박한 심정으로 강구하겠습니다.
▽이 위원=젊은 독자들이 뉴스에서 도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다루는 주제가 그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기자와 취재원의 관심사 위주로 보도한다는 것이죠. 뉴스의 개념이 서로 다르니 자신에게 맞는 대안 매체를 찾아가는 겁니다. 심각하게 고민해 젊은 독자를 다시 끌어들일 방안을 찾기 바랍니다. 취재뿐만 아니라 이슈를 선택하고 처리하는 데에도 시민 저널리스트, 블로거 등을 참여시키는 협력(collaborative) 저널리즘을 시도해 볼 만합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젊은 기자들과 수시로 대화하지만 젊은 독자들의 관심사가 뭔지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대학생인 인턴기자들에게 자신들의 관심사를 기사화하도록 해 봐도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아예 보지 않으니까 그런 기사가 난 줄도 모르는 거죠. 신문이 다양한 섹션을 발행하면서 주간지 스타일의 기사를 실음으로써 신문의 잡지화가 이뤄졌습니다. 잡지로선 인터넷뿐 아니라 신문에도 영역을 많이 뺏겨 더욱 어려운 처지입니다.
▽정 위원장=정론지로서 ‘품격’과 ‘균형’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탈하는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실험적인 방법을 바로 신문에 도입할 게 아니라 동아닷컴에서 먼저 하고 역으로 종이 신문에 반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닷컴에서 스타를 발굴하고 검증해 신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동아닷컴 토론방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누리꾼 가운데 상당수가 40대 이상입니다. 60대도 많습니다. 외국에 사는 누리꾼들은 오프라인 행사가 있으면 일부러 귀국까지 할 정도로 적극적입니다. 이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윤 위원=신문마다 색깔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 색깔에 맞춰 한 가지 목소리만 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중구난방은 곤란하겠지만 필진이나 기자에 따라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런 건 드러내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젊은 기자부터 논설위원까지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신문의 논조를 예측할 수 있게 하고, 결국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차이를 허용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위원=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독자는 주는데 매체는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언론 시장이 언론인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변했음을 뜻합니다. 주기적으로 독자 조사를 해 독자가 원하는 뉴스가 뭔지 과학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체도 좀 더 부드럽게 바꿔야 합니다. 스토리 텔링, 내러티브 문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팩트는 왜곡하거나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창조성을 발휘해 재미있게 쓰는 주관적 사실주의도 필요합니다.
▽윤 위원=전문 저널리스트, 파워 블로거, 누리꾼의 협업 체제인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저널리즘’도 참고할 만합니다. 미국의 한 방송사가 몇몇 특정 상품의 가격을 비교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이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가게의 가격을 기자들이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까 누리꾼들에게 자기가 사는 동네의 물건 가격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 달라고 한 거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수만 건의 정보가 올라온 겁니다. 기자들이 그중 일부를 무작위로 뽑아 검증했더니 95% 이상이 정확했습니다.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하루 만에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이뤄진 겁니다.
▽정 위원장=동아일보가 내년에는 묵은 듯한 가운데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아픈 곳을 긁어내면서도 새살이 돋도록 하는 데 앞장서기 바랍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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