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 24일자 신문에는 낯익은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서울의 한 성장클리닉에서 7세의 누나와 5세의 남동생이 키를 키워준다는 기구 위에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는 사진이었다.
이 신문은 이날 A섹션 6면과 10면으로 이어지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성장 호르몬 주사, 침술 치료, 한약 처방 등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는 등 한국의 ‘별난 행태’를 자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성공을 위해 키를 키운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인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좋은 배우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키가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기사에는 한국 사회의 세태를 과장 또는 왜곡했다고 항변할 수만은 없는 낯 뜨거운 사례가 줄줄이 실렸다.
주부 장모 씨는 서울의 한 성장클리닉에 15세 아들을 정기적으로 데리고 다니며 키가 크는 운동을 시킨다. 장 씨는 대학을 졸업한 두 딸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는데도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결혼을 시킬 때 애먹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장 씨는 “당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며 “공부는 뒤처지면 나중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키가 안 자라면 영원히 만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성장클리닉에서 운동기계에 누워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던 장 씨의 아들 서모 군은 “키 작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방 클리닉에서 손목과 두피에 잔뜩 침을 맞고 있는 문모 양(5) 사례도 소개했다. 어머니 서모 씨는 문 양과 한 살 아래의 아들을 성장클리닉에 데리고 다니는 데 매달 770달러(약 90만 원)를 지출한다. 두 남매는 매일 두 차례씩 녹용과 인삼이 들어간 한약도 먹고 있다. 서 씨는 “우리 사회는 외모가 중요하다. 딸아이가 키가 작아 친구들에게서 놀림을 받고 자신감을 잃을까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신문은 지난달 한 TV프로그램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한 한 여대생의 발언으로 사회 전체가 떠들썩했던 이른바 ‘루저녀’ 사건도 언급했다. “이 여대생은 한국인들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드러내고 말하지 못하는 사실을 얘기한 것뿐”이라는 한 클리닉 원장의 인터뷰도 실었다.
이날 기자와 마주친 이웃에 사는 한 미국인 부부는 뉴욕타임스 기사 얘기를 꺼내며 “정말 한국 아이들은 키가 크려고 클리닉을 찾느냐”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줬지만 뉴욕타임스의 많은 독자들이 한국을 빗나간 외모 지상주의에 얽매인 이상한 나라로 기억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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