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한국이 국제사회에 진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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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7일 20시 00분


내년은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다. 우리는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세계인이 놀라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북진통일(北進統一)을 호언하던 이승만 정부는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내주고 부산으로 피란했다. 해운대 앞바다에 수장될 뻔했던 나라를 건져준 것은 누구였는가. 경제발전도 우방의 도움 없이 독력(獨力)으로 이룬 것인지 겸손하게 자문(自問)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혜의 해자(垓子)처럼 부산 방어선을 둘러싼 낙동강에서 두 달 동안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1950년 7월부터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된 9월까지 수많은 미군 병사들의 피로 낙동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병사 200명의 중대가 밤새 전투를 치르고 나서 겨우 20명만 살아남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나지 않는 전투였다. 6·25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칭송하는 사람은 많지만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한 월턴 워커 중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워커 중장은 정찰기를 타고 적의 기관총 위협을 무릅쓰고 저공비행을 하며 겁을 먹고 후퇴하려는 부하들에게 확성기로 “전선으로 돌아가 끝까지 싸우라”고 고함을 쳤다. 그는 6·25전쟁 중 사망해 이름을 쉐라톤호텔이 있는 ‘워커힐’에 남겨놓았다.

낙동강 전투에서 죽어간 미군들

한국전쟁에서 16개국 군대 61만6000여 명이 참전해 4만670명이 전사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할버스탬은 6·25전쟁을 다룬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퇴역군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했다. 그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거둔 승리를 자랑스러워했고, 전쟁 때는 좋아하지 않았던 한국이라는 나라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전선에서 흘린 피땀에 대한 자부심을 토로했다.

한국은 전후에 원조로 연명하던 국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공여국이 되었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들어간 것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DAC는 공적개발원조(ODA) 수원국(受援國) 명단에서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규모를 2007년 기준 935달러 미만으로 추정하고, 가나 케냐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저소득국으로 분류했다. 남북의 격차가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 데는 우리가 남달리 똑똑해서라기보다는 운 좋게도 북위 38도선 이남에 위치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가군(群)의 줄에 섰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어려운 시절에 원조물자를 제공하고 시스템과 기술을 가르쳐주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 수출시장을 열어준 우방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안보와 경제는 물론이고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억제 같은 환경 문제까지도 하나로 연결된 세계에서 유아독존(唯我獨尊)은 가능하지 않다. 1년 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 세계 금융시장은 붕괴 직전에 몰렸다. 산업생산이나 국제무역은 1930년 대공황 초기보다 더 빠르게 추락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공조체제를 구축해 대규모로 신속하고 열정적으로 경기부양 정책을 펴고 수조 달러의 공공자금으로 금융기관의 동요를 진정시키면서 대불황(Great Recession)은 대안정(Great Stabilization)으로 바뀌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송년호에서 진단했다. 아직도 국제경제의 안정이 정부 지출에 크게 의존할 정도로 취약하다는 점에서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공조는 더없이 긴요하다. 한국은 내년 G20 정상회담의 개최국으로서 국가적 위상과 역할이 한껏 무거워졌다.

나는 김희상 본보 객원논설위원(예비역 육군중장)이 쓴 칼럼 ‘아프간 파병 좀 더 과감해도 좋다’(12월 23일자)를 용기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과격세력에 넘어간다면 세계 평화가 테러에 무릎을 꿇게 될 수 있다. 영국은 약 1만 명을 아프간전쟁에 파병했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320명을 파병하는 안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원조 공여국으로 부채 갚아야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때는 성공한 뒤에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리라는 기대도 포함돼 있다. 장학금으로 공부해 출세한 학생이 불우한 이웃을 외면하고 넉넉한 인생을 혼자 즐긴다면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에 여유가 생긴 만큼 세계 공통의 과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제3세계 사람들도 도와주고,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우리의 몫을 다할 필요가 있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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