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거닐다 보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유학생이 눈에 띈다. 친구의 학교에 찾아가 길을 물었을 때 한국 사람일 것만 같았던 상대방이 실은 아시아권 유학생이었던 일도 있었다. 이들은 한국말로 열심히 방향을 일러줬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영어로 다시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들은 한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한국 대학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의 한국어 실력은 수업을 듣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학에서도 유학생을 선발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인 한국어 점수를 요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점수가 한국에서의 학업 능력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일상생활을 위한 대화와 대학 수업에 쓰이는 언어는 분명 차이가 있다. 대학 어학당에서 가르치는 한국어 개설 강좌를 살펴보면 대부분 초심자 수준의 일상회화에 맞춰져 있다. 학부 유학생을 위해 논문 쓰는 법을 가르친다거나 학문적 말하기를 교육하는 일은 거의 없다. 총련계 교포로 19년간 일본어를 쓰며 살아왔던 A 양은 재작년 국내 사립대학에 입학한 뒤 어학당 코스를 밟았다. 1년간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따라가기엔 아직 많이 벅차다고 한다.
애로사항은 유학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함께 프로젝트를 해야 하고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한국 학생 역시 유학생과 듣는 수업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만 출신의 학생과 지난 학기 팀을 이뤘던 내 친구는 의사소통의 지난함에 혀를 내둘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시아권 학생끼리는 한자를 써가며 스무고개처럼 서로의 의중을 짐작하거나, 영어과목이 아닌데도 교수가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이것도 유학생과 한국 학생 모두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때 가능한 얘기다. 문제는 유학생의 절반 이상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들은 잠시 머물렀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는 교환학생이 아니다. 한국어로 과제를 내고 발표를 하고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아야 한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벽이다. 한국에서 공부하기로 한 이상, 한국어를 철저히 습득해 수업에 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유학생이 한국에서 청운의 꿈을 이루도록 학교가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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