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는 도시공간과 관련한 삶의 질, 도시경쟁력 향상, 낙후된 도심의 도시재생사업, 공공디자인 등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용산 참사는 도시개발과정의 공공성 부족, 민간 위주의 이익 창출, 공공서비스 차원의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 부족, 개발과정의 통제 수단과 주민의 실질적 참여 통로의 부족 등 함축된 문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기 위해서는 기존 도시계획체계의 지속적인 현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개발계획허가의 최종결정권을 행사하는 영국의 계획허가제(planning permission)가 관심을 끌고 있다.
계획허가제는 모든 도시개발의 인허가를 지자체가 작성한 자치구 계획에 의거하여 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영국 도시계획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계획허가제는 공공성 확보, 지자체의 현실을 기초로 하는 현안 반영과 결정, 주민참여, 개발주체 간의 민주적인 협상을 통해 지자체의 공익을 반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2004년 도시계획체계 개혁을 통해 지자체의 도시계획 권한을 정책적으로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
영국의 성공적인 계획허가제의 운영은 세계화와 지방화시대 경쟁력 있고 살 만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한국의 도시계획체계 개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먼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도시계획체계의 구조와 법령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통제와 규제 중심의 기존 도시계획체계에서 벗어나 전략계획중심으로의 재편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도시계획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적 여건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도시계획을 지자체가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자체의 도시계획 현실을 바탕으로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도시계획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자체가 처한 상황에 맞도록 도시환경을 구체화하는 창의적인 도시계획이 가능하다. 이는 지자체의 분권과 자율적 역량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자치구의 도시계획 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체계적인 자치구 계획의 작성과 실행 역량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시개발과정에서 많은 이권이 개입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자체가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공평한 절차에 따라 반영하여 개발허가를 결정하는 민주적 소양의 함양은 영국 계획허가제 도입의 전제조건이다.
변화하는 21세기 도시환경과 세계화 지방화의 여건 속에서 지자체의 역량을 바탕으로 하는 개발허가제의 도입은 미래지향적인 선택이라 사료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자체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개발의 목적과 공익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계획허가제의 실행 역량을 준비했는가는 아직 회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계획허가제의 도입은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계획허가제 도입 검토는 삶의 질을 높이는 21세기 정주(定住)환경을 조성하려는 도시계획체계 개혁의 좋은 기회를 중앙정부에 준다. 동시에 지자체에는 도시계획의 수립 집행 관리역량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영국의 계획허가제는 한국 사회의 공간 환경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소양을 한 차원 높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률적 문화적 차원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