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원재]등록금 걱정 ‘대학생 심정’ 국회가 헤아렸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수고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반드시 대출을 받아야 할 형편의 대학생입니다.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취업 후 학자금 대출이 되는 거죠? 언제부터 대출 신청을 받나요? 어디에 신청해야 하나요? 알고 싶고 매우 궁금합니다.”

2일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애타는 심정으로 기다리다 드디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휴 중에 글을 올린 학생의 반가운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4일 장학재단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국회에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아서 확실하게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자와 통화한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더 명확하게 말했다. “계획대로 1학기부터 시행하는 것은 일정상 불가능합니다.”

사정은 이렇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해 말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와 등록금 상한제 동시 실시를 둘러싼 여야간 이견(異見) 때문에 관련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법 처리를 다음 달 1일로 미뤘다. 하지만 예정대로 다음 달 1일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시행령을 만들고 입법예고를 하려면 20∼25일이 더 걸린다. 그 무렵이 되면 이미 신입생은 90%, 재학생은 60%가 등록을 끝낸 시점이라 제도 시행이 무의미해진다.

등록금을 빌린 뒤 졸업 후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될 때부터 갚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ICL)’는 기존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빌린 등록금 이자를 내기 위해 대학생들이 공부를 미뤄가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

빌린 돈을 못 갚은 탓에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지원 대상은 40만 명에서 107만 명으로 대폭 확대되고, 금리도 시중금리보다 낮은 편이다. 이런 만큼 정부는 당연히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시행을 준비했다. 대학생들도 제도 시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등록금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막판에 국회의원들이 훼방을 놓은 것이다.

정부는 결국 본격적인 시행을 2학기로 미루고 그 대신 기존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들이 나중에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한 대학생은 “당장 낼 돈이 없어 고민하는 학생의 심정을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이번 학기 등록금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대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장원재 경제부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