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70>사진의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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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1910년대 경성에 사진관
1929년 정해창 첫 개인전
신낙균 사진학 길 열어

1929년 3월 29일 국내 처음으로 개인 사진전을 연 정해창 씨의 사진작품.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1929년 3월 29일 국내 처음으로 개인 사진전을 연 정해창 씨의 사진작품.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예술사진에 만흔 취미를 가지고 다년간 열심히 연구하는 정해창 씨는 오는 29일부터 사흘 동안 예술사진 작품 전람회를 광화문 삘딩에서 개최한다더라.”

―동아일보 1929년 3월 28일자》
황철(1864∼1930)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진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88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진 촬영술을 익히고 사진기를 구입해 귀국한 뒤 자택의 사랑채에 촬영소를 설치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본인 사진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사진관을 차렸다. 이후 이들에게서 사진을 배운 한국인들이 사진관을 냈다. 1920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창간으로 사진의 기능은 뉴스를 전달하는 데로 확대됐다.

1926년에는 조선인 사진가들이 경성사진사협회를 결성해 회원들 사이의 친목과 사진예술의 창작의욕을 북돋웠다. 1926년 2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서울 낙원동에 있는 녹성사진관과 조선사진관의 발기로 금일 오후 여덟 시에 경성사진사협회 발대식이 열리는데 많은 사진관들이 참석하기를 바란다더라’고 전했다.

1910년 설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학교는 사진교육의 요람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사진술을 배운 최창근이 강의를 맡았으며, 1927년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한 신낙균(1899∼1955)이 뒤를 이었다. 이 학교는 1935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25년 동안 800명 가까운 사진사를 배출했다.

국내 사진학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 신낙균은 동아일보 사진부장 시절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면서 이길용 체육부 기자, 화가 이상범 등과 함께 일장기를 말소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9년 3월 29일에는 정해창이 서울 광화문 빌딩에서 국내 첫 개인 사진전을 열었고 같은 해 서순삼도 평양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정해창은 서예가, 수필가를 겸한 아마추어 사진가였고 서순삼은 평양에서 삼정사진관을 운영하며 조선일보의 지방주재 보도사진가로 일했다.

민충식 신칠현 강대석도 1920, 30년대의 선구적 사진작가다. 민충식은 초상사진으로 주목받았고, 신칠현은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정형화한 사진관 형식의 초상사진에서 벗어나 초상을 예술적 경지로 이끈 작가였다. 강대석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를 지냈는데 1933∼35년 삼남지방의 수재 상황을 취재한 사진이 돋보인다.

1930년대에는 아마추어 사진계가 형성됐다. 서울에서는 경성 아마추어 사진구락부와 백양사우회(寫友會)가 결성됐고 대구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도 사우회가 조직됐다.

1960, 70년대에도 사진은 서민이 갖기 힘든 취미였다. 1980년대 들어서 경제성장으로 카메라가 널리 보급됐고, 199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은 흔한 취미가 됐다. 요즘 최첨단 디지털카메라 덕분에 일반인도 전문작가 못지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인터넷 블로그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개인이 찍은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선보일 기회도 많아졌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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