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이 죽어간다. 지구온난화로 빙하끼리의 간격은 점점 멀어져가고 머물 공간을 잃은 북극곰은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이 모든 것은 한 세기 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심을 쏟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그의 저서 ‘불편한 진실’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온실가스 방출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에너지 절약을 들었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조명기기를 소비자가 선택하거나 대기전력을 줄이는 일, 냉난방을 효율적으로 하고 단열을 보강하는 조치만으로도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었으나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무절제한 소비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실제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에너지 가격을 시장원리에 따라 연동시키는 조치다. 에너지 가격 연동제는 원료 가격 변동을 사용요금에 적절히 반영하여 소비주체의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고 사업자의 재무 리스크를 완화하는 제도다. 연료가격이 상승할 때에는 급속한 요금 부담 증가를 분산해 파급효과를 완화하고 연료 가격이 하락할 때에는 즉각적으로 요금을 인하해 소비자에게 원가 하락분만큼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론 이미 연동된 연료 가격은 차기 요금조정에 반영되므로 연간 소비자가 부담하는 요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시장상황에 따라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조정체계를 갖추게 된다. 전력부문에 에너지 가격 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매년 수천억 원에 이르는 국가적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지난해 3월 경영실적 악화와 유가·환율 변동에 취약한 재무구조를 들어 한국전력의 신용평가를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신용등급 상향을 위해 원가에 연동하는 가격조정시스템 도입을 권고했다. 한전 분석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한 단계 상승할 때 매년 600억 원의 이자비용 절감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연동제를 도입하면 불필요한 에너지 수입을 줄이고 자본조달비용을 감소시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낮추게 된다.
에너지 가격 연동제는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미 도입해 운영하는 제도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합리적인 에너지소비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1996년에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제3차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에너지 위기를 2008년에 경험했다. 또 한국경제가 이런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를 고유가 상황에서도 늘어나는 에너지소비를 통해 확인했다. 모두가 에너지 소비절약 대책을 쏟아냈지만 고유가 상황이 다소 완화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관심하다.
다시 찾아올 에너지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 걸쳐 에너지 절약형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 모른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 연동제는 에너지 절약 생활화를 정착시키는 시발점이 되는 조치이다.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행동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캐치프레이즈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합리적인 제도를 도입하여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일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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