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의 첫 번째 화두로 남북 정상회담이 등장했다. 우리 정부가 작년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남북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수준에서든 북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한 데 이어 북한이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력(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기초하여 북남(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려는 우리의 립(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화답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작년 상반기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와 제2차 핵실험에 취해진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게 된 전략적 동기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압박 국제공조 체제를 와해시키고, 미국과 일본의 질투심을 유발해 향후 미북 회담 및 일북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며 이를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함이다.
북한이 전략적 차원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접근할진대 우리가 이에 대해 정략적 차원에서 대응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수혜자는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북한의 전략적 동기를 와해시킬 용의주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북핵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면서 인도적 사안(납북자, 국군포로 문제)과 경협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10·4선언의 최대 약점은 북핵 문제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채 평화와 경협에 치중한 점이다.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몇 가지 전략 포인트를 실천할 때에만 가능하다. 첫째, 북한과의 대화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 체제를 지속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부분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일정 규모의 인센티브가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핵 문제의 결정적 돌파구가 마련되기 전에 제재를 해제하거나 대규모 지원을 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를 그토록 비난한 김정일 정권이 정상회담을 자발적으로 희망하게 된 것은 대화와 압박이라는 병행전략(two-track strategy)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구체화하기 위해 한국 측 초안을 갖고 6자회담 참가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랜드 바겐이건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이건 용어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폐쇄-불능화-폐기라는 단계적 접근을 악용하여 시간을 끄는 ‘살라미 전술’을 포기하고 빠른 시간 내에 핵 폐기에 착수할 수 있도록 크게 주고 크게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미-중-일-러와 조율하고 이를 토대로 북한과 담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자와 다자회담 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더라도 실질적인 논의는 미북, 남북, 일북 회담과 같은 양자회담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이렇게 될 경우 6자회담은 양자회담에서 이룩한 성과를 사후에 추인(endorse)하는 기구로 작동할 것이다. 6자회담이 개최되면 조만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중 간의 평화포럼이 개최될 가능성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양자-4자-6자회담 간의 시너지 효과 창출에 기여하는 회담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한미공조가 핵심이다. 이런 전략 포인트를 실천에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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