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작년 말 351조 원에 이른다. 작년 순증액 43조 원은 2008년 순증액 36조 원을 크게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부채 총액은 지난해 3분기에 713조 원으로 불어났다. 지난 9년 사이 명목 국내총생산은 1.7배로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가계부채는 3.2배로 증가해 가계의 채무부담이 훨씬 무거워졌다. 소득 대비 부채 수준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이자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대 후반에서 6%대 중반까지로 지난 1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양도성예금증서(CD)의 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가 2주일 사이에 최고 0.07%포인트 올랐다.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변동금리로 돈을 빌리는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이 5000억 원가량 늘어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상반기 가계의 은행대출 이자 부담이 작년보다 2조 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한 ‘출구전략’이 시작돼 시중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만기가 되는 일시상환형 주택담보대출이 51조 원으로 이 중 일부는 원금을 갚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금리가 1∼3%포인트 오를 경우 우리나라의 가계부실비율이 8.5∼17.0%포인트 상승한다고 지적한다.
가계부채 쇼크를 완화하려면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 그러나 작년 11월 말 공식 실업자는 81만9000명이지만 구직을 포기하고 ‘대책 없이 그냥 쉰다’는 99만9000명을 포함한 사실상의 실업자는 330만 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36만7000명이 늘었다. 경기가 회복돼도 고용의 빠른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안이하게 들린다. 일자리 부족, 가계부채 증대, 부동산 거품, 금융부실, 내수부진 등 올해 한국경제의 위험요소들이 얽혀 있어 하나만 삐끗해도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내수회복의 암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출구전략의 본격적인 시행은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 대신 가계대출에 열을 올렸던 금융계가 올해 금리가 올라 상환여력이 약화한 가계에 리스크 부담을 다 떠넘기고 ‘돈장사’만 해선 안 된다. 정부 금융계 가계 모두가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