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달 14일 엘리제궁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이집트 고분 벽화 한점을 돌려줬다. 한국인들에게는 자동적으로 1993년 청와대를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도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반환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행사였다. 사르코지의 이중잣대
프랑스는 정상 사이에 이뤄진 반환 세리머니에 그치지 않고 이집트와 갈등을 빚었던 나머지 벽화 문제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무바라크가 프랑스를 방문하는 동안 이집트 주재 프랑스 대사관은 다른 벽화 4개를 이집트 정부에 넘겨줬다. 반면 미테랑은 반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96년 세상을 떴고 나머지 외규장각 도서 296권은 여전히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남아있다.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듯 우리 국민의 속을 뒤집어놓는 소식이 엊그제 프랑스에서 또 날아왔다. 파리 행정법원이 12월24일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라는 시민단체 문화연대의 소송을 기각했다는 뉴스가 뒤늦게 전해졌다. 프랑스 법원의 논리가 가관이다. 법원은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가재산이며 취득 상황과 조건은 국가재산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재판과정에서 ‘불행한 약탈’을 통해 외규장각 도서를 보유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프랑스 법원의 논리는 ‘약탈한 물건을 자기 이름으로 등재하면 강도행위에 관계없이 자기 재산이 된다’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르코지가 벽화를 반환한 논리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엘리제궁은 성명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문화재 불법 거래와의 전쟁 차원에서 벽화를 이집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이번 반환은 문화재의 불법적인 수출입과 이전을 금지한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을 적용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프랑스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궁이 문화재 보호 챔피언이라고 떠벌리는 사이 법원은 억지논리를 동원해 약탈품을 지키는 나라가 프랑스인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한 국가 문화재다. 프랑스가 돈을 주고 사들인 8세기 이집트 고분 벽화에 비하면 죄질이 훨씬 나쁘고 국가 책임이 무겁다. 무거운 책임은 외면하고 가벼운 책임만 인정한 프랑스가 계속 문화선진국으로 자임할 것인지 궁금하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는 하다. 93년 이후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간헐적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문화연대의 반환노력이 더욱 돋보인다. 문화연대는 국민 성금으로 3억4000만원을 모아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2007년 3월에는 1억원을 들여 프랑스의 대표적 신문 르 몽드에 반환을 호소하는 전면광고를 냈고, 이번 소송을 위해 1억2000만원을 썼다. 나머지 1억2000만원은 일본에 있던 임진왜란의 영웅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 구입용으로 사용했다. 문화연대는 다음 주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당연히 항소하고 싶지만 10만 유로(약 1억6000만원)나 되는 소송비용이 큰 부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외규장각 반환소송 계속해야
이집트의 경우를 보더라도 프랑스 대통령이 결단하면 문제가 풀린다. 사르코지는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서울에 온다.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그가 외규장각 도서 에 대해 한국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최소한 그가 부담을 느끼고 변명이라도 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반환 가능성이 커진다. 모금이나 기업의 지원으로 소송을 계속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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