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훈]부안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2003년 전북 부안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위도에 건설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부안에 집결하고 부안성당(주임신부 문규현)은 그들의 아지트가 됐다. 일부 인사들은 여고생들에게 “시집가면 기형아를 낳을 것”이라는 거짓 선동을 서슴지 않았다. 지역발전을 위해 방폐장 건설을 유치하려던 당시 김종규 군수는 반대 세력에 린치를 당했다.

▷지난해 말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했다.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 대국이자,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기술이 낳은 승리였다. 아랍에미리트와 수출 계약을 한 12월 27일이 ‘원자력의 날’로 지정될 예정이다. 세계 최대의 원전시장이 될 중국에도 10기 이상을 수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 수출을 성사시킨 공로자에게 훈·포장을 서훈하고 대한민국의 원자력 비전도 선포할 계획이다.

▷부안이 거부한 방폐장은 경주 군산 영덕 포항이 유치 의사를 밝힌 뒤 해당 지역의 주민투표를 거쳐 가장 높은 찬성률을 기록한 경주가 가져갔다. 유치에 나선 군산은 새만금을 사이에 두고 부안에 인접해 있다. 부안에서 그 난리를 치며 결사반대했던 바로 그 방폐장의 유치를 군산 시민은 투표자의 84.4%가 찬성했다. 노무현 정부의 치적 가운데 하나는 지역경쟁 구도를 채택해 19년간 표류한 방폐장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부안 사태가 일어났던 그해 영화 ‘살인의 추억’이 5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경기도 화성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송강호 주연,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다. ‘살인의 추억’은 아직 관객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부안의 추억’은 날로 희미해져 간다. 그해 주민을 선동해 부안을 소요 속에 몰아넣었던 반핵단체, 환경단체는 이번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침묵하고 있다. 원전이 살아 움직이는 원자력이라면, 방폐장은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 신발 옷가지를 처리하는 무덤이다.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는 석유를 쓰는 화력 발전소를 짓지 않고 한국에서 만든 원전을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최열 씨를 비롯한 환경단체 사람들과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종교인들은 2003년 부안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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