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연예인 사생활 파헤치는 누리꾼의 이중성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2일 03시 00분


“아이비와 함께한 ‘과거의 남자’가 누구였는지 조사해 올릴 겁니다.”

10일 여가수 아이비(본명 박은혜·28)의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에 유출되자 한 누리꾼이 인터넷 게시판에 게재한 글이다. 아이비는 6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Mnet ‘아이비백’에 출연해 번지점프를 한 후 인증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이비가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인증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한 인터넷매체에 보도됐다. 이후 사진에 실려 있던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는 순식간에 인터넷 전반에 확산됐다.

주민등록번호가 공개되자 일부 누리꾼은 ‘웬 떡이냐’는 반응과 함께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퍼 나르는 수준을 넘어 연예인 ‘아이비’, 나아가 ‘박은혜’란 한 20대 여성의 사생활을 이 잡듯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로 검색을 한 후 아이비가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포털 사이트를 찾아냈다. 이들 사이트에 접속한 후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로 ID, 비밀번호를 역추적해 아이비가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했으며, 어떤 글을 남겼는지 확인했다.

반나절 만에 ‘박은혜’란 개인의 사생활은 낱낱이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2003년 만나던 아이비 남자친구를 찾아냈다’, ‘아이비의 휴대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아이비가 산 물품, 통신판매 목록을 추적했다’, ‘성형했는지 예전 얼굴사진을 찾아보겠다’는 등 사생활 정보가 담긴 글과 사진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웹 하드 등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 이를 자랑하듯 게시판에 소개하는 누리꾼들까지 나왔다. 피해가 커지자 아이비의 소속사 측이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을 정도다.

문제는 상당수 누리꾼이 타인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철저히 파헤치면서도 이를 ‘유희’와 ‘놀이’로 여길 뿐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무선인터넷 시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는 누리꾼들의 상당수는 10, 20대다. 이들은 이중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받길 원한다. 애인과 헤어지면 상대방의 미니홈피, 블로그에 있는 자신의 사진 등 각종 개인정보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상식이자 권리다. 또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ID, 가명 등을 사용해 실명 등 개인정보 노출을 철저히 피한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면 남의 프라이버시도 중요하다. 누리꾼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인터넷에 떠도는 개인정보가 자신의 것인 상황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김윤종 사회부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