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작년 6월 1일 산업은행과 기업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었고 12월 30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을 발표했다. 7개월간 금호그룹이 6개 계열사를 통해 10차례 발행한 8734억 원어치의 채권은 주로 소액 개인투자자들이 소화했다. 워크아웃 발표 보름 전에 나온 936억 원의 금호산업 채권도 개인투자자들이 사줬다.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관한 언론 보도는 2008년 여름부터 나왔고 작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다. 그러고도 채권을 찍어 매번 900억 원 가까이 확보한 비결은 뭘까. 힌트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다. 이 법의 대상은 금융기관이다. 개인 일반법인 해외투자자는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은행이 갖고 있는 채권은 보통 감액되고 출자로 전환되지만 개인 보유 채권은 만기 때 발행기업에 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걸 믿고 적극적으로 여유롭게 연 10% 내외의 고금리 채권에 투자했을 것이다. 일부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을 것 같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금호그룹 채권단이 3일 “워크아웃에 들어간 두 회사의 기업어음(CP)이 만기가 되면 부도처리한 후 투자자 확인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이 갖고 있는 두 회사의 CP나 회사채는 수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법으로 다툴 여지는 있겠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길게는 4개월간의 채권재조정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채권단에 합류해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 1999년 ‘대우채 환매’ 사태 때 정부가 일반투자자에게 원금의 95%까지 보장한 것은 비상조치였고 그런 특혜는 이제 없다.
일부 개인투자자의 모럴해저드가 금호그룹의 막판 연명(延命)을 도와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충격이나 피해는 개인에 국한된다. 하지만 금호그룹 내부의 모럴해저드라면 주주와 금융기관 등에도 큰 파장을 미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금호그룹은 작년 말 금호산업이 갖고 있던 아시아나항공 주식 12.7%를 952억 원에 금호석유화학에 매각했다. 이로써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그룹의 지주회사가 됐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내놓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은 유지하겠다는 그룹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워크아웃 발표 9일 전의 일이다.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금호산업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은 점을 문제 삼는다. ‘주식거래 원상회복’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채권단 회의는 6일 ‘추후 협의를 통해 해결’로 방향 아닌 방향을 잡았다. 채권단은 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점을 잊지 말고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금호 사태는 3년 전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로 4조 원 이상을 날린 것이 핵심이다. 3조 원 안팎이면 적정하다는 대우건설을 6조4000억 원에 사들이느라 계열사는 물론이고 재무적 투자자의 돈을 끌어들였다가 좌초하고 말았다. 금호 측이 재무적 투자자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을 금리로 환산하면 복리로 연 9%라고 한다. 거래 쌍방이 모두 모럴해저드에 빠져 ‘대박’을 노렸을 것이다.
금호그룹의 자체 구조조정 계획은 추가 매물이 없어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다. 미련이 남은 대주주가 구조조정 기회를 또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호 사태의 전체 과정이 대주주 금융기관 투자자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에게 ‘각종 모럴해저드’ 교과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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