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어제 제안한 평화협정 회담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회담을 제의한다”고만 밝혀 한반도 평화의 핵심 당사국인 남한의 참여 여부를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정전협정에 서명한 북한 미국 중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의 당사국이 된다. 북한은 회담의 주목적도 북-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 이후 줄곧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 북한의 전술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취한 그동안의 행동에 비추어 평화협정 회담 제의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핵문제와 관계없이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가장 큰 요인은 북한의 핵도발이다. 북한이 2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북-미 관계가 지금처럼 냉랭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핵도발만큼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은 장애물도 없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유엔이 강력한 대북(對北)제재를 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의 태도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북한의 평화회담 술책은 1990년대 후반 4자회담(남-북-미-중)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북한은 3년 동안 4자회담에 참여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북-미 양자접촉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해 끝내 회담을 무산시켰다. 설사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예전처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들고 나올 게 뻔하다. 북-미 간 핵군축과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도 요구할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협정을 원한다면 6자회담 복귀 선언부터 해야 옳다.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하자’는 합의가 들어 있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을 6자회담 테두리 내에서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핵문제를 제쳐두고 평화협정 논의부터 하자는 주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대전제로 이뤄진 9·19 성명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평화협정 논의는 비핵화가 진전되고 남한이 북-미-중과 함께 당사국으로 참가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 착수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