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조영남, 워홀을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품격이 떨어져? 상업적?… 천만에!
‘예술 바꾼 선구자’… 맞습니다, 짝짝짝

“그 이전의 현대미술은 우아함-고상함 일변도
메릴린 먼로-마오쩌둥도 그의 손에서 예술로 재탄생”


퀴즈 하나. 세기의 미녀 스타 메릴린 먼로와 중국의 정치 지도자 마오쩌둥을 한 쌍으로 묶어서 세계적인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사람은?

“앤디 워홀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앤디 워홀 특별전을 관람한 가수 조영남 씨는 “‘베토벤’(1987) 같은 작품의 과감한 컬러를 보면 그가 상업주의 시대를 얼마나 신나게 즐기고 갔는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앤디 워홀 특별전을 관람한 가수 조영남 씨는 “‘베토벤’(1987) 같은 작품의 과감한 컬러를 보면 그가 상업주의 시대를 얼마나 신나게 즐기고 갔는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네에! 맞습니다. 박수! 짝짝짝….

퀴즈 둘. 코카콜라 병과 캠벨 수프 깡통을 멋진 미술 작품 모델로 승격시켜 준 주인공은?

“그것도 앤디 워홀요!”

네에! 그렇습니다. 다시 박수! 짝짝짝….

퀴즈 셋.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를 비롯해서 난다 긴다 하는 유명 스타들이 너도나도 친구로 삼고 싶어 했던 인물은?

“역시 앤디 워홀요!”

네에! 정답입니다. 박수! 짝짝짝….

이 세 가지 상식만 가지고 나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시대를 초월한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특별전을 보려고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아갔다.

경기 과천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찾아가기 힘든 미술관이다. 반면 서울시립미술관은 초행길에도 찾아가기가 편하다. 그렇긴 한데 드나드는 출입구는 영 옹색하다. 싸라기눈을 뚫고 현관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추운 날에 사람들이 과연 그림 구경을 하러 올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젊고 예쁜 여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있는 거였다.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나를 반겨 맞아 줬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미국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을 찾아가서 작품들을 직접 골라 왔다고 한다. 이분이 내게 슬쩍 던진 앤디 워홀에 대한 촌평이 재미있었다. 간단하다.

“이 시대의 파블로 피카소예요.”

음악으로 치자면 이 시대의 베토벤이라는 뜻일 거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온통 울긋불긋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현대미술관(MOCA)과 라크마(LACMA·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관(MOMA) 등에서 본 그림들인데 서울 한복판에서 한꺼번에 보게 되다니. 너희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앤디 워홀은 어떤 인물인가. 여러 가지 답이 나온다. 20세기 미국 산업 문명의 사생아. 팝 아트의 총결산. 히스패닉 흑인 천재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와 얽힌 성별 파괴자. 동성애자.

나는 20여 년 전에 세계의 현대미술을 배운답시고 뉴욕을 찾아갔다가 기겁하고 돌아섰던 적이 있다. ‘현존하는 유명 미술가의 70% 가까이가 동성애자’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어쨌든. 앤디 워홀의 품격이 떨어진다고? 상업적이라고? 현대미술 수준을 화장실 낙서 수준으로 격하시켰다고?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앤디 워홀은 명문 카네기멜런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화가다. 전시회에 와서 그의 데생 솜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 예술 시장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예술은 온통 위장이다. 백남준의 말처럼 ‘사기꾼의 속임수’다. 앤디 워홀은 대머리였다. 그는 자신의 외모를 평생 가발로 위장했다.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처음 컬러 프린터로 사진이나 텍스트를 대량으로 찍어냈을 때, 워홀은 미국 특히 뉴욕 중심의 미술 시장이 곧 도래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다. 그 이전의 세계 현대미술은 우아함과 고상함 일변도였다. 물감을 흩뿌리는 기법을 쓴 잭슨 폴록이나 색면 추상 회화의 마크 로스코를 워홀의 작품 곁에 비교해 놓고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 앤디 워홀은 유치함과 조악함의 대표 주자다. 그것은 매우 ‘뉴욕적’이다. 그는 상업주의의 대표 주자다. 아니, 그는 상업주의 그 자체다.

“조영남 씨, 이 중에 제일 비싼 게 뭐겠어요?”

유 관장이 물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그가 “저거예요”라며 뭔가를 가리켰다. 흑백으로 프린트한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초상이었다.

“저게 워홀 최초의 실크스크린 복제품이에요. 가격은 ….”

빌어먹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축에 드는 내 집의 몇 채 값이다. 아! 나의 화투 그림은 언제쯤에나…. 아! 내가 빨리 죽어야지.

앤디 워홀은 체코 쪽 유대계 혈통으로 1928년에 태어나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아인슈타인과 프란츠 카프카 등 유대인 초상화가 많은 것으로 봐서 유대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동양인 마오쩌둥, 흑인 바스키아와 마이클 잭슨, 백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믹 재거의 초상이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심한 인종 분리주의자는 아니었던 듯싶다.

워홀 관련 서적을 들춰 보면 ‘혼합 매체의 대표 주자’로 나와 있다. 그는 일찍이 연극 활동을 하고 영화도 찍고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친교를 맺었다. 언젠가 나는 그의 영화 ‘잠’을 본 적이 있는데 지루하고 길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숨 쉬며 자는 사람의 모습만 냅다 찍어 놓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공장)’라고 불렀다. 지금 세계에 흩어져 있는 워홀의 작품들은 대개 이곳에서 생산된 것들로 보면 된다.

다시 퀴즈. 본인이 미술품 속에 담아낸 쟁쟁한 유명 인사들보다 세월이 흐른 뒤 훨씬 더 유명해진 사람은?

“앤디 워홀요!”

네에! 맞습니다. 박수 크게! 짝짝짝….

조영남전시 안내
○장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기간: 4월 4일까지(월요일 휴관)
○전시 내용: 초기부터 말년까지 워홀의 대표작 102점과 문서 사진 잡 지 등 283점
○관람료: 어른 1만2000원, 청소년 1만 원, 어린이 8000원
○문의: 02-548-8690, www.warhol.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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