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인의 휴양지 겸 생태관광지로 유명한 코스타리카의 해변 도시 케포스(인구 2만 명)에 마누엘 안토니오라는 세계적인 국립공원이 있다. 지난해 말 그곳에 있는 대한민국 초등학교(Republic of Korea School)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 학교엔 한국인이 아니라 코스타리카 학생만 600명이 다닌다.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시커먼 건물이다. 외국인이 묵는 해변의 호텔과 대조되어 하필이면 이렇게 초라한 시골학교에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창피한 느낌도 들었지만,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 알리기로는 적격이다. 크게 발전했다는 한국과 관계를 맺으면 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 보고 1985년에 학교명을 한국학교라고 바꾼 모양이다.
양철로 지붕만 얹은 강당에 아열대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저녁. 행사가 시작되자 학생들이 커다란 태극기를 세워 들고 입장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교장과 함께 졸업생 60명 전원에게 일일이 뺨을 맞추며 졸업장을 주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대사로서 폼만 잡았지 별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심정이 씁쓸하기만 했다. 초기에는 몇 명 안 되는 한인사회에서 피아노를 사다 주고 인천의 어느 학교와 자매결연도 했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줄어들어 이제는 대사관에서 연말에 한 번씩 가보는 것 외에 관계가 뜸하다. 우연히도 이 지역에 ‘킴’이라는 한국인 한 분이 살면서 신경을 쓰고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신혼시절부터 이 시골에 이민을 와 25년째 살고 있다. 남들은 모두 도시로 이민 가서 장사를 하는데 그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와서 철물가게를 열었다.
주말이면 이웃과 성당에 가고 골프보다는 현지인과 함께 축구를 한다니 그야말로 현지화 이민의 전형이다. 20년이 넘도록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운영한 철물점이 번창하여 사업을 건축자재 부문으로 확대했다. 성실한 한국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그에게 외상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현금 대신 땅으로 갚아 지금은 계곡이 흐르는 산자락에 별장을 지어 말을 키우고 해변의 금싸라기 땅에는 객실 70개의 호텔을 짓는 중이다.
완성을 앞둔 호텔은 한국말이자 스페인어로도 그럴싸한 산바다(San Bada)라 이름 지었다. 객실 문마다 둥그런 태극을 목각하여 놓을 정도로 고국을 자랑스러워한다. 호텔 경영은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아들에게 맡길 예정인데 이민을 안 왔으면 분명히 한국에서 농사일이나 할 거라면서 흐뭇해했다. 그는 이 머나먼 코스타리카의 시골 해변에서 여생을 마칠 것인데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이라도 해보고자 시골 아이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 이민자가 700만 명이나 되므로 세계 구석구석에 한국인이 안 가 있는 곳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역사적 지리적 이유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개국에 집중됐고, 중남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처럼 먼 곳에는 규모가 미미한 편이다. 이제는 언어나 지리적 거리가 별 문제가 아닌 세계화의 시대다. 블루오션을 찾듯이 한국인 이민자도 남이 덜 개척한 지역으로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클럽인 원조공여국에 가입하여 자부심이 높아졌다. 한편으로는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일반 국민 또한 제각기 주는 마음을 갖고 베푸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코스타리카 해변에 우리나라 이름을 붙인 이 가난한 대한민국학교에 관심 있다면 대사관이나 제e메일(tmkwon79@mofat.go.kr)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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