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가야광역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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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으레 어제를 되짚고 내일을 가늠해보며 유장(悠長)한 시간의 강을 오르내린다. 올해처럼 10년, 그것도 21세기의 첫 1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해가 되면 강상(江上)에 머무르는 시간도 더 길어지게 마련이다. 동아일보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라는 연중기획을 준비한 배경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에서 “해피 뉴 이어!” 대신 “해피 뉴 디케이드(Decade·10년)!”라는 인사말이 오가는 풍경도 그런 연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세상은 온통 세종시에 볼모로 잡혀 있지만, 나는 ‘가야광역시’의 포로가 됐다. 사실 도시(city)로만 보면 세종시는 그다지 감동적일 것도 없는 중급 규모의 신도시일 뿐이다. 그러나 창원 마산 진해, 아니 마산 진해 창원, 아니 진해 창원 마산시민들이 만들어갈 통합시엔 세종시류(類)의 자족기능을 넘어선 꿈이 있다. 바로 잃어버린 가야 이야기다. 한때 신라를 압도했던 선진철기문화로 고대 동아시아의 해상강국이었던 가야, 백제 고구려보다 100년 먼저 망했을 뿐 무려 600년 동안이나 한반도 역사의 주역이었던 가야, 바로 그 가야 이야기를 통해 세 도시는 새로운 10년, 새로운 100년의 꿈을 꿀 수 있다.

세 도시는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 아라가야(함안) 사이에 있던 가야 제국(諸國)이었다. 김해평야가 모두 바다이던 시절, 금관가야에서 남해로 나가는 현관이 지금의 진해시 용원동이었고, 아라가야의 바다 관문이 지금의 마산시 진동이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나가사키, 부산이 무역항으로 유명하지만 고대에는 가야가 중국∼황해도∼서해∼남해∼쓰시마∼이키∼규슈 북부를 잇는 거의 유일무이한 중계무역항이었다.

2월 국회에서 세 도시의 통합 법안이 통과되면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통합 시장이 선출되고, 7월 1일 서울시보다 넓은 면적에 108만 명의 인구를 가진 가야광역시가 탄생한다. 통합시의 법적인 명칭이 무엇으로 정해지건 내겐 가야의 부활이고, 누가 뭐래도 가야광역시의 탄생이다. 사실은 가야를 통해야 통합시 명칭을 둘러싼 세 도시의 자존심 싸움을 새로운 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후기(後期) 가야시대의 리더였던 대가야의 가실왕이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작곡하게 했다. 가실왕은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니 어떻게 하면 통일할 수 있을까”라고 했지만, 실상은 가야 여러 나라의 통일을 얘기한 것이었다. 12곡은 가야 12국을 뜻한다. 그런데 가실왕은 제1곡명을 하가라도(금관가야)로 하고, 제2곡명을 상가라도(대가야)로 정했다. 대가야는 스스로를 형으로, 금관가야를 아우로 주장하면서도 가야 정통성의 계승을 전기(前期)의 중심이었던 김해에서 구한 것이다(이영식의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기행’). 가실왕의 정치적 지혜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통합시의 명칭 문제는 정말 아무 문제가 안 될 텐데….

세종시 수렁이 깊어질수록 가야광역시를 향한 열망이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혹한 속에서도 마음은 7월로 치닫는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 도시의 시대라고 한다. 가야광역시의 시대나 마찬가지다. 21세기의 가야는 어떤 ‘선진철기문화’를 보여줄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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