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 때문에 행복할까. 왜 불행할까. 얼마 전 친구가 “요즘 어때?”라고 물었다. “어, 기분이 좋아. 그냥 좋은 기운들이 느껴져”라고 했더니 그가 덧붙인다. “행복하다는 거네….” 기분이 좋은 게 행복한 거라는 설명이다. 그래, 우리는 기분으로 행복을 느낀다. “아, 행복해” 하면 되는데 쉽지 않다. 무엇이 방해할까.
내가 볼 때는 기준이 너무 높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던 감사한 순간의 끝에 나는 불행해졌다. 천 년 역사의 유적을 돌고 오니 그리 감동할 만한 건축물을 찾기 어려웠다. 알래스카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고 나면 웬만한 석양은 아름답지 않다. 친구들은 열광하는데 나는 서해의 석양 정도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더 큰 게 있으면 작은 것은 행복을 주지 못한다. 내내 만족하며 쓸고 닦던 내 집도 넓은 평수의 모델하우스를 돌고 오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너무나 로맨틱한 드라마는 내 남편에게, 내 연인에게 불만을 갖게 만든다. 비참하고 서글픈 사연의 주인공을 보면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마음은 갖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더없는 사랑과 행복의 해피엔딩 주인공과 나를 견주는 이율배반적인 대입이 행복을 방해한다. 우선은 기준을 낮출 일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일이 많다.
그러고서 오늘 내게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얼마 전 모임에서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숙제가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가만 생각해보는데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내용이 없었다. 허무주의나 비관론자도 아니건만 그리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많은 행복을 누린 탓이 아니다. 일에 빠져 살던 나의 20년은 뭐가 재미있는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조차 잘 몰랐었다.
남에게 매여서는 못 잡을 행복감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주말이면 스키장으로 달려가 보드를 즐긴다. 내가 아는 사장은 혼자 가야 할 때 외롭기도 하고 운전사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보드를 사주고 가르쳐 주었다 한다. 나는 늘 ‘무엇’보다 ‘누구와’가 중요했는데 그는 나와 다르다. 그에게는 무엇이 있었다. 나는 새삼 그가 부럽다. 무엇을 향해 세상에 하고 싶은, 달려갈 만한 ‘거리’가 있는 그가 부럽다.
좀 늦었으나 부러워하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당연히 사람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에서 누구와라는 데 연연하면 행복하기 어렵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모두를 매번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할 때가 우리에게 온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순간 때문에 야속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더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무엇 때문인 것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진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가 있다. 오찬에 참석한 어느 최고경영자는 우리 6명의 만남을 한 달 내내 기다렸다고 한다. 오늘의 만남도 즐겁지만 기다리는 내내 행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상의 작은 ‘행복거리’를 만들어 간다고 한다. 1년의 마지막 날과 설날 연휴 끝 새해 첫날의 점심시간을 일부러 비워두고 일상의 작은 행복거리를 찾는다. 그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자신의 회사에서 가장 거친 일을 하는 부서의 직원과 보내고 새해 첫날은 리더가 아픈 지점의 직원과 함께했다고 말한다. “참 좋았다”며 행복을 말하는 표정이 환하다.
그래, 행복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백마 탄 왕자님이 와야만,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공주가 돼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동화 속 얘기일 뿐이다. 우리는 훨씬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파랑새는 결국 내 마음 안에 있다는 멋진 말이 일상이 돼야 한다. 오하시 시즈코의 ‘멋진 당신에게’에서처럼 일상의 식탁에 테이블보 하나 바꾼 그날이 행복이다. 그래서 나누는 가족과의 대화가 행복이다.
찾고 만들어가는 게 삶 아닌가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일 이상으로 그 시간의 반 정도는 뚝 떼어 편지 몇 줄 쓰라고 권하고 싶다. 미리 얼려 둔 냉장고의 얼음덩어리를 사발에 담고, 밖에 천지로 쌓인 눈 한 움큼 떠다가 위에 얹고, 아직 살아 있는 푸른 잎으로 식탁을 치장하는 주부라면 행복은 늘 그녀 편이다.
행복은 기분이라던 친구의 말이 맞다. 더 중요한 점은 내가 내 기분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 기분은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았던가. 오늘 속 썩인 이가 없으면 불행하지 않아 다행이고, 날 만족시켜준 한 명 덕에 나의 거창한 행복이 맘대로 왔다 갔다 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이들이여 행복거리를 찾아라. 잠시 찾아보았는데 그게 없다면 이제는 아예 만들어 보자. 자, 가만 보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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