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아바타와 상상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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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5일 20시 00분


영화가 끝났지만 관객들은 넋이 나간 듯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재미있었니” 하고 물어보자 딸아이도 영화의 감동에서 깨고 싶지 않은 듯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영화 ‘아바타’ 얘기다. 매진 행렬이라고 듣긴 했지만 ‘돈 내고 보겠다’는데 3차원(3D) 상영관 표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한 친구는 “1만3000원이라는 싼값에 외계행성 여행을 하고 왔다”고 표현했다.

상상력이 먼저, 기술은 다음


아바타는 ‘극장 영화는 2차원’이라는 기존 영화의 형식과 문법을 바꾸어놓았다. 외계종족인 ‘나비족’과 기기묘묘한 동식물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비족 근육의 핏줄, 안면근육과 동공 크기 변화, 미세한 눈 떨림까지 구현해냈다. 디지털 효과를 담당한 존 레터리는 “배우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잡아냈다”고 말했다. 화면은 특수 장비를 단 배우들의 ‘모션 캡처(motion capture)’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디지털 기술이 이렇게 진보하다간 할리우드 배우들은 다 굶어죽게 생겼다.

모두들 영화 속 디지털 기술에 감탄하고 있지만 난 아바타에서 한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상상력의 가공할 힘에 전율하게 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영화 ‘타이타닉’을 만들기 전인 1995년부터 파란색 피부를 가진 외계종족에 관한 영화 스크립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이미지로 구현해낼 기술이 없어서 원고는 서랍 속에 잠자고 있었다. 이후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로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원고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상상력이 먼저고, 다음이 기술이다.

상상력은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내는 힘이며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다. 과학기술이 인류를 발전시켰지만 이를 선도한 것은 상상력이다. 인간이 새처럼 날고 싶다는 상상을 하지 않았으면 비행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처럼 바닷속을 다니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잠수함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으로 우주의 질서를 밝혀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천재성의 비밀이 모든 문제를 어린아이처럼 상상의 눈으로 보는 능력에 있다고 말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실 과학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그는 푸른 언덕에 누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태양광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상상 끝에 자신이 여행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사실을 발견한다. 한 방향으로 계속 여행한 뒤 원래 지점으로 돌아온 것이라면 우주는 결국 ‘곡선’이 아니겠는가.

정치와 기업에도 상상력이 필요

상상력은 과학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것, 공부하고 요리하는 모든 행위에 상상력이 동원된다. 특히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타협을 이끌어내는 정치야말로 가장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상상력이 있다면 세종시 문제도 풀리지 않을 까닭이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 차세대 휴대전화인 스마트폰 바람이 거센데, 애플 ‘아이폰’이나 구글 ‘넥서스원’이 우리나라 휴대전화보다 기술이 월등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휴대전화에는 있으리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기능을 넣은 것이 히트 비결이다.

롤프 옌센은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21세기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구매한다고 예언했다. 상상력은 과학기술, 문화예술 발전의 원천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젠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富)의 유전자가 되고 있다. 한국 관객 900만 명 돌파를 앞둔 영화 아바타의 성공이 그 증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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