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싸워도 ‘미생지신’ 공방 수준 넘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한나라당 내부에서 세종시를 둘러싼 친이, 친박 간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원칙과 국가 백년대계를 들먹이던 양측 의원들의 입씨름이 박근혜 정몽준 전현직 대표 간에 감정적인 설전(舌戰)으로 번졌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중국 고사도 등장했다. 애인을 기다리다 익사한 미생을 두고 한쪽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미련함을, 다른 쪽에서는 약속을 중시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서로 상대방을 공박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분당(分黨)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정당정치에서 국가 중요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자 정치적 위치에 따라서 여야가, 때로는 같은 당 안의 정파가 논쟁을 벌일 수 있다. 친이, 친박도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엄연한 파벌이다. 파벌이 존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50여 년간 집권해오던 일본 자민당의 몰락을 두고 ‘내부 파벌정치의 붕괴’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파벌정치가 활발한 때에는 의원들이 긴장감을 갖고 경쟁하고 공부하며 열심히 뛰었으나 파벌이 붕괴되면서 오히려 온실 속 화초 처럼 무기력해졌다는 것이다.

친이, 친박 간 팽팽한 긴장도 역설적으로 보면 한나라당을 건강하게 만들고 생존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소지가 있다. 다양성이 중시되는 정치에서 국회 의석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정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집단사고에 빠져 이견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그러나 무릇 국가대사를 따지는 정치 논쟁에서는 금도가 있어야 하고 룰이 있어야 한다. 나름의 격조도 요구된다. 아무리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을 놓고 다투더라도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상대에게 일방적 굴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홍수가 났는데 미생처럼 다리 밑에서 애인을 기다릴 순 없지 않느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느니 하는 말꼬리 잡기 수준의 싸움은 넘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치열하게 각축하되 감정적인 언설로 상대방을 자극하기보다, 콘텐츠를 놓고 합리적 이성적 민주적으로 경쟁하라.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다.

본질을 놓고 다투다 정 안 되면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 그 정도의 문제를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해 갈라선다면, 그런 밴댕이 소갈머리로 어떻게 나라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슬기롭게 공존의 해법을 찾기 바란다. 그게 정치의 본령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