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의원 ‘투표 상습 불참’은 책임정치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18대 국회가 개원한 2008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년 반 동안 720개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놀랍게도 법안 표결에 불참한 의원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720개 법안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500건 이상의 표결에 불참한 의원이 민주당 11명, 자유선진당 2명 등 1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 투표에 불참한 의원은 전체 의원의 20%에 해당하는 60명이나 됐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일부 의원의 불성실한 의정활동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법안의 찬반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의원들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대신해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인 의정 활동이다. 대의(代議)민주주의는 전체 국민이 국가의 모든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생겨난 제도다. 국민을 대신해 의원들이 법률안을 제출하고 심의하며 찬반 토론과 표결에 참여한다. 투표 불참도 의사 표시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상습적으로 법안 표결에 불참한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각종 법안에 대한 의원 개개인의 찬반 여부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유권자들이 후보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법안에 대한 표결 결과가 평소 정치적 주장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면 유권자들이 해당 의원을 계속 지지할지를 결정할 때 고려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의원들의 투표 내용이 상세히 공개된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일반적으로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그러나 투표 참여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의 권위가 손상될 수 있다.

법안 투표의 불참률이 높은 의원들 중에는 구속돼 있었거나 투병 생활 때문에 불가피하게 투표할 수 없었던 의원들도 일부 있기는 하다. 당 차원에서 소속 의원 전원이 투표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고, 한꺼번에 수십 개의 법안을 표결할 때 불참하면 한 번 국회에 나오지 않았어도 수십 건의 법안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60명의 의원이 국회를 통과한 법안의 절반 이상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난해 397개 법안을 표결 처리한 미국 연방 상원의 경우 의원 93명 가운데 투표 불참률이 10%가 넘은 의원은 단 4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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