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중심지인 델마 지역. 이번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다. 승용차 한 대를 빌려 17일(현지 시간) 오전 이곳을 둘러봤다. 델마는 ‘생지옥’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먹을거리를 찾으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시신 썩는 냄새를 피해 마스크를 썼다. 길가에 너부러진 시신들은 나무처럼 굳어 썩어갔다. 30도를 넘는 무더위 때문에 시신들은 금방 부패했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다 숨을 거둔 사람들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듬성듬성 보였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곳곳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참사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도저로 잔해 더미를 퍼내면 시신 여러 구가 걸려 나왔다. 군인들 가운데 일부는 장갑차로 돌아가 방독면을 꺼내 들었다.
주저앉은 대통령궁 근처의 한 종합병원 앞마당에는 천막과 나무로 만든 임시병동이 차려졌다. 이곳은 상처가 썩어가는 이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관절이 뒤틀린 채 그대로 굳어가는 환자들은 의사만 애타게 부르다 정신을 잃어갔다. 한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Help me(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며 기자의 팔목을 잡았다. 목소리조차 낼 힘이 없어 멍하니 누워 있던 할머니는 가슴에 남은 상처가 썩어 금세 숨을 거둘 듯했다. 각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료진은 특히 “마취제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치안 상황이 나빠지면서 구호활동마저 더디게 진행되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콘크리트 잔해 위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구호품을 실은 비행기 수십 대가 하늘을 오고 갔지만 여전히 먹을 물조차 부족해 길바닥 구정물도 모아야 했다.
미국대사관 앞에는 아침만 되면 장사진을 이뤘다.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 아이티인들은 몇 날 며칠이라도 기다릴 태세였다. 캐나다대사관도 비슷했다.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도 하루 종일 북적였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호물자가 풀리는 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자 굳게 닫힌 문 앞으로 모인 이들의 눈에는 핏발이 섰고 금세라도 폭동을 일으킬 듯 소리를 질러댔다.
기자는 18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들과 함께 철수에 나섰다. 아침 일찍부터 시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기자 일행이 탄 버스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물품을 싣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때 거리를 점거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버스가 고립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전날 흥분한 군중이 불을 지르고 유엔군과 대치하는 모습을 본 터라 순간 머리가 쭈뼛해졌다.
우리 일행은 커튼을 치고 골목길을 돌아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야 다행히 국경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 폭도라도 만나지 않을까 긴장하며 3시간을 달린 끝에 도미니카공화국의 국경에 들어서는 순간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한 처절한 취재 현장을 떠나면서 미안한 마음과 핏발이 선 아이티인들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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