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희제에서 건륭제까지 3대, 130여 년은 ‘강건성세(康乾盛世)’로 불린다. 1661년부터 1795년까지의 이 시절은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태평성대였다. 유능한 군주가 잇따라 나와 민생이 안정되고 관료사회 기강이 확립됐다. 영토도 넓어져 현재 중국의 영역은 대부분 이때 확정됐다.
옹정제는 61년과 60년간 재위(在位)한 강희제와 건륭제 사이에서 비교적 짧은 13년간 통치했다. 그는 중국 관료사회의 해묵은 병폐인 ‘나랏돈 빼먹기’와 백성 착취, 상납 및 수뢰 구조와 ‘끼리끼리 봐주기’를 척결했다. 부친인 강희제 말엽의 온정적 태도로 흐트러진 공직 기풍을 바로잡아 아들인 건륭제에게 넘겨준 옹정제가 없었다면 강건성세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위 승계과정에서의 의혹과 즉위 후 공포정치로 일부 유학자의 비판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업적은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에서 벼슬길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부(富)를 축적하는 지름길이었다. ‘위에선 정책, 아래에선 대책’이라는 오랜 속담도 있다. 아무리 공직 비리를 뿌리 뽑으려 해도 탐관오리들이 교묘히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해 효과가 없다는 의미였다.
옹정제는 부패 관리에 대해 참수나 유배 등 ‘형사적 처벌’과 함께 강도 높은 ‘민사적 처벌’을 병행했다. 자택과 일가친척에 숨겨놓은 재산을 샅샅이 환수해 ‘몰수의 황제’라는 말도 들었다. 횡령액을 채우기 위해 다른 부문의 나랏돈을 전용하거나 허위보고를 하면 가중 처벌했다. 뒷날 청나라 학자 장학성은 옹정제의 숙정(肅正) 노력을 ‘천 년에 한 번 있을만한 쾌거’라고 평가했다.
우리 공직사회도 부정부패의 역사가 길다. 왕조 시대는 물론 ‘민주공화국’이 들어서고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비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이 어제 적발한 공무원 83명은 농민들에게 빌려줄 농기계를 구입하면서 업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상습적으로 제공받았다. 공직기강 감사 때마다 시간외 수당 및 출장비 부풀리기, 복지예산 횡령, 법인카드 개인적 사용, 이권과 결탁한 금품 수수가 줄줄이 드러난다. 승진 등 인사를 둘러싼 상납도 뿌리 뽑혔다고 보긴 어렵다.
부패 혐의가 공개된 뒤 상당수 전현직 공직자가 보이는 행태는 씁쓸하다. ‘검은 돈’을 주었다는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수사가 왜곡됐다며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다.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 출신 등 끗발이 좋을수록 더 심하다. 하긴 요즘 일부 판결을 보면 범범 혐의가 짙어도 판사만 잘 만나면 충분히 ‘무죄’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일단 버틸 만도 하겠다.
걸핏하면 ‘죽은 권력에 대한 정치 보복과 탄압’을 운운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가 드러나면 당연히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의 양지에 있을 때 단죄하지 못했다면 나중에라도 엄벌해 ‘현재권력과 미래 권력’에 경고와 교훈을 남기는 것이 옳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내 편’이라면 내용에 관계없이 무조건 감싸고도는 우리 사회 일각의 일그러진 모습이 걱정스럽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4대강 사업 공사도 본격화한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공무원들이 연루된 비리 개연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위에선 정책, 아래에선 대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옹정제는 “온갖 수단으로 지위와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나라 재산으로 자기 배까지 채우려는 관리들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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