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150개가 넘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아간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부터 아시아계 이민자와 남미 인도 중동에서 온 사람까지 모두 섞여 커다란 나라를 이룬다. 뉴욕의 맨해튼처럼 큰 도시에 가 보면 미국이 정말 다민족 국가임을 실감한다. 좁은 골목 안에 중국식 이탈리아식 아랍식 태국식 등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모여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렇고,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의 피부색이나 옷차림을 봐도 그렇다.
피부색도 종교도 문화도 모두 다른 사람이 한 나라에서 함께 살다 보니 미국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일,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가치관이 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음식 문화가 아닌가 싶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유학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세미나 수업이 점심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이 점심을 시켜서 함께 먹으며 수업을 하자고 했다. 한 사람씩 원하는 샌드위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두 가지 중 한 개를 고르면 되는 문화에 익숙했던 내게 이들이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모습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일단 빵부터 종류가 많았다. 흰빵 잡곡빵 밀빵 이탈리아식빵. 다음에는 빵에 무엇을 바를 것이냐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마요네즈나 머스터드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어떤 치즈를 얹느냐, 햄은 어떤 종류를 원하느냐, 야채는 무엇을 원하느냐…. 골라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10명이나 되는 학생이 시키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에게는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좀 싫어하는 음식일지라도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이 하나로 통일해 시키는 분위기이다. 미국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주문한다. 그 과정이 오래 걸려도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처음에는 이런 미국 문화가 짜증스럽기도 했다. 대충 맞추면 되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가 하는 심정에서 말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는 미국에서 사는 사람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많음을 깨닫게 됐다. 내가 인류학을 전공했으므로 같은 과 친구와 교수는 내가 지닌 한국적 문화와 사고를 존중해 주려고 노력했다.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미국 사람도 우리집에 오면 당연히 신발을 벗었다. 포크와 나이프에 익숙했던 사람도 우리집에 오면 젓가락질을 서로 해 보겠다고 했다. 처음 먹어본다는 김치와 떡에도 점차 익숙해져 나중에는 김치전 호박전 갈비를 나보다 더 좋아하게 된 친구도 있었다.
나 역시 미국 친구를 초대할 때에는 누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안 먹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유대인 친구, 소고기를 안 먹는 무슬림 친구, 고기 자체를 안 먹는 채식주의 친구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됐다.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어떤 미국인이 커피 한 잔 주문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절반은 카페인 없는 커피로 달라고 하면서 거기다가 온도 몇 도 이상의 물을 얼마만큼 더 넣고 저지방 우유 반에다가 보통 우유 반을 섞은 후에 캐러멜 시럽을 타 달라고 했다.
요즈음에는 한국에도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나와 남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듯해서 반갑다. 우리가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표현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외국인에게는 인종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100만 명이 넘고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700만 명이 넘는 시대에,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어울려 살아감으로써 우리 문화가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발판을 마련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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