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취임 초기 노 대통령은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언론사 정치부장보다 먼저 경제부장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경제부장들이 차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제문제를 얘기하고 대통령이 나중에 답변했다.
필자 순서가 되어 고용문제에 대해 말했다. “요즘 시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동남아 사람’이라고 합니다.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란 뜻인데 남편은 명예퇴직해 쉬고, 아들은 취직이 안 돼 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업문제가 심각하니 일자리 만들기가 중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자리를 고쳐 앉더니 “그런 말은 정부를 악의적으로 헐뜯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배로 늘어난 대졸자 일자리 캄캄
노 정부가 출범한 2003년에는 실업률이 급등했다. 외환위기 이후 고공 행진하던 실업률이 정보기술(IT) 붐으로 낮아졌다가 버블이 꺼지면서 다시 높아졌다. 특히 청년실업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요즘 청년들의 일자리 사정은 7년 전보다도 악화됐다. 2003년 처음 조사한 취업준비자수가 35만 명에서 작년 11월 말 56만 명으로 증가했다. 취업하기 위해 학원이나 직업훈련기관에 다니거나 집과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쉰다’고 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퇴직했거나 일거리가 없어 쉬고 있는 사람들이 2003년 90만여 명에서 2008년에는 135만여 명이나 됐다. 이들 중에는 50, 60대가 절반을 넘는다. 이렇다 보니 실직한 남편과 사는 주부가 더 많아졌다.
노령층 일자리도 문제지만 청년층 일자리 해법은 캄캄하다. 이명박 정부가 올해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어제 첫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안에 25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고 의료 교육 보육 등 유망 서비스 분야의 진입 규제를 풀겠다고 되뇌었지만 노조와 야당의 반대로 진척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우리나라 대졸자의 첫 취업 연령은 다른 나라에 비해 3∼4년 이상 늦다. 군 복무 문제도 있지만 취업이 어렵게 되자 재수 삼수하는 취업준비생이 늘어난 탓이 크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대학교와 대학생 수는 두 배로 늘었으니 더하다. 1990년 대학교는 107개, 대학생은 104만 명이었으나 2008년에는 174개, 194만 명이나 됐다. 국민소득이 늘면서 너도나도 대학 가기를 희망하자 대학교 인가를 무더기로 내준 탓이다. 2000년 이후에도 대학교는 14개, 대학생은 26만 명이나 늘었다. 그때 대학을 양산한 결과가 오늘날 대졸 실업자들을 급증케 했다.
직업 체험과 진로 교육 제대로 해야
예전엔 높은 대학진학률이 선진국의 징표로 환영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작정 늘린 대졸자는 국가의 골치다. 일자리 없는 성인 남자를 한 집에 둘이나 두지 않으려면 4년제 대학생을 줄여야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학생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하도록 한다. 굳이 4년제 대학을 고집하지 않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정규대학도 3년제가 많다. 4년제 대학만 늘리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잘못이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직업 체험의 기회를 넓힐 필요가 있다. 적절한 시기에 진로교육을 받으면 적성도 찾고, 취업 준비하느라 방황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부가 수백억 원을 들여 직업체험관을 짓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들은 체험관에 보내도 좋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걱정할 테지만 그런 체험을 한 아일랜드 학생들은 공부도 더 열심이고 사회에도 잘 적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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