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81>영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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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日영어수업 크게 줄여
학생들 동맹휴업 반발
1930년대엔 학원 붐

1933년 동아일보에 실린 ‘영어글자와 단자 알기’ 해설 삽화.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33년 동아일보에 실린 ‘영어글자와 단자 알기’ 해설 삽화.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시내 보성고등보통학교 삼학년 생도 사십오명은 지나간 칠일 금요일부터 일제히 등교치 아니한다는대 그 내용을 드른 즉 원래 그 학교의 삼년급 영어교사는 일본인 전중용승(田中龍勝) 씨가 가르치는 터인대 학생 측에서는 일본인은 원래 발음이 불량하야 그 발음대로 영어를 배워가지고는 도뎌히 세상에 나서서 활용을 할 수 업스니 다른 조선사람으로 영어교사를 변경하야달라고 요구하얏으나….”

―동아일보 1920년 5월 12일자》
일제강점기 영어의 명운은 우리말의 그것과 유사하다.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면서 관립 외국어학교를 없애고 필수과목이던 영어를 선택과목으로 바꾸었다. 조선어가 모국어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일본어 시간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과 닮았다.

영어는 개화기 조선에서 서양문물이라는 스테이크의 섭취를 돕는 포크나 나이프와 같은 존재였다. 그 핵심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1885) 경신학교(1885) 이화학당(1886)이 있었다. 그런 영어의 지위를 일제는 일본어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반발을 불러왔다. 1920년 7월 1일 청량리에 있는 농업학교 조선인 학생들이 영어 수업시간을 늘릴 것을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벌이려다 2명이 퇴학당했다는 동아일보 기사는 그 같은 반발의 한 단면을 보인다.

반발에 부닥치자 일제는 한발 물러섰다.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면서 영어를 다시 고등보통학교의 필수과목으로 바꾸고 주 32시간의 수업 가운데 영어 수업을 1학년 6시간, 2·3학년 7시간, 4·5학년 5시간으로 확대했다.

동아일보 지면에는 1930년대 후반까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사설 영어강습소 개설과 발음교정 특강, 영어웅변대회 개최 등 기사가 쏟아진다. 1933년 10월 29일에는 알파벳과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아주 쉽게 배우는 법, 영어글자와 단자(단어) 알기’란 기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영어 열풍은 서리를 맞았다. 1938년 3월 제3차 조선교육령으로 영어 수업은 1·2학년 5시간, 3학년 6시간, 4·5학년 5시간으로 줄었다. 1938년 6월 3일 ‘영어교단의 비상신호’ 기사는 러셀, 밀 등 영미권 자유사상가의 글을 영어교재에서 제외하라는 총독부의 지침을 전했다.

급기야 1940년 1월 13일에는 “금년 대학, 전문학교 입학시험에서 종전보다 다른 것은 종래 절대로 중시하던 영어시험을 폐지한 것”이란 보도가 등장한다. 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으로 영어는 다시 선택과목이 되고, 시간도 1∼3학년 3시간, 4·5학년 2시간으로 줄었다. 1939년 이후 사실상 수업이 폐지된 조선어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복 이후 미군 진주는 영어에 대한 열망을 활짝 열어젖혔다. 세계화로 인한 영어의 위상 확대는 이를 더욱 부채질해 2004∼2005년 전 세계 토플 응시인원 55만 명 가운데 한국인이 10만여 명(18.5%)으로 가장 많았다는 통계조사가 발표됐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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