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빛나는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시인 주요한이 번역한 ‘동방의 등불(A Lamp of the East-Korea)’이란 시가 실렸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년)의 시다. 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격려의 시였다. 조선 민중이 그의 시에서 ‘조선이 부활해 빛나는 동방의 문화국가를 이룩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인도의 타고르가 수상하자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동아일보사는 타고르에게 일본 강연 이후 한국 방문을 요청했다. 타고르는 일제의 방해로 조선 방문 요청에 응하지 못함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도쿄지국장 이태로에게 이 시를 써 주었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대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고 있던 독자들은 타고르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영어로 된 원문을 번역한 주요한은 동아일보 평양지국장을 지냈다.
▷그제 인도 뉴델리의 오베로이 호텔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제1회 타고르 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문학상은 삼성전자가 인도 국립문화원과 함께 타고르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연말 제정한 상이다. 인도문학협회가 인도에서 사용하는 8개 언어로 쓴 작품을 심사해 수상자를 선정했다. ‘동방의 등불’을 헌시(獻詩)할 때만 해도 국권을 잃은 빈곤국이었던 코리아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돼서 자신을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한 것을 타고르도 지하에서 기뻐할 것이다.
▷프라티바 파틸 인도 대통령은 같은 날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말미에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취와 국민적 역량에 존경을 표한다. 한국의 빛은 21세기 동아시아 시대에 한층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나라의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된 날에 80여 년 전 타고르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보내준 따듯한 관심과 애정을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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