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국익으로 포장되는 정치논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7일 03시 00분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음울한 미래를 다룬 디스토피아(Dystopia) 소설이다. 유토피아(Utopia·이상향)의 반대인 디스토피아의 독재자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반어법의 반복을 통해 국민을 세뇌시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어법적 언어 왜곡은 민주주의 사회에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구적이고 퇴행적인 친북(親北) 좌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진보’라 포장하며 국민을 현혹해왔다. 그러자 정말로 그들을 진보라 믿는 국민이 꽤 많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제는 우파도 어설프게나마 언어 왜곡을 시작했다. 내 주장은 ‘국익(國益)’으로 포장하고 상대 주장은 ‘정치논리’로 매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렇다면 국익과 정치논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스트셀러 경제원론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은 자유무역을 예로 들어 그 차이를 설명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시되면 양국은 서로의 비교우위 산업에 특화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양국은 자유무역을 통해 그 산출물을 교환함으로써 국부(國富)를 증대시킬 수 있다. 이것이 국익이다. 국익이란 다름 아닌 경제논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농축산업이나 미국의 자동차산업처럼 비교우위가 떨어지는 산업은 FTA로 피해를 본다. 이런 산업일수록 잘 조직화돼 있다. 이들은 FTA 반대논리로 ‘일자리 상실’이나 ‘국부 유출’ 등을 내세우며 정치인들을 조직력으로 압박하고 후원금으로 구워삶는다. 이것이 정치논리다.

세종시에 들어갈 엄청난 세금

국익 또는 경제논리는 국민 전체의 부(富)를 증가시킨다. 이에 비해 정치논리는 전체 국민의 희생에 기초해 일부 집단의 이익을 도모한다. 작년 11월 말 철도노조의 파업 논리는 정치논리다. 이 파업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법과 원칙에 따른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던 것은 경제논리다.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우리 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이 경제 외교력을 발휘한 것 역시 국익에 충실한 쾌거였다.

최근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가 (국가 백년대계를 벗어나) 너무 정치논리로 가는 게 안타깝다”며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수정안 역시 원안(原案) 못지않게 정치논리가 강하다. 수정안은 전체 국민의 혈세로 일부 성난 충청 민심을 달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가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익이라면 ‘노무현의 대못’을 뽑는 선에서 세종시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간의 거짓 약속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한 뒤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고 세종시 주민에게는 원래의 후생 수준을 회복시켜주는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노무현의 대못을 뽑으려다 오히려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갈 ‘MB의 대못’을 박게 생겼다. 이 대못 때문에 현재 107조 원의 부채에 허덕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올해 국가채무는 4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채는 결국 전체 국민이 고스란히 부담하게 될 것이다.

수정안의 핵심인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오랫동안 유치를 희망해왔다. 이를 경제논리로 풀려면 지자체들을 경쟁시켜 최적의 입지를 선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를 세종시에 안겨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국가 백년대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정치논리의 세종시가 아니라 지난 좌파정권 10년의 다른 후유증들이다. 그 10년을 거치며 우리의 성장 잠재력은 크게 약화됐다. 그리고 최근의 ‘PD수첩’ 사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사건, 시국선언 전교조 교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편향 판결에서 보듯 좌파의 영향력은 사법부로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易地思之로 우파 분열 막아야

좌파정권의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제도 개혁을 통해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시장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부터 자신만이 국익을 생각한다는 독선에서 벗어나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우파 진영의 분열을 막고 개혁의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진정한 국익을 위해 불법 파업에 단호히 대처하고 부르튼 입술로 UAE 원전 수주를 발표하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바로 그 모습으로 선진 유토피아로 가는 우리의 제도 개혁을 확실하게 이뤄내길 간절히 바란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