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좀 야박하게 들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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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7일 03시 00분


국회의원들에게 감사할 게 하나 있다. ICL이라는 낯선 말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오게 만든 일이다.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싸움박질 덕분에 ICL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으니 말이다. 결국 여론의 압박에 밀려 ICL특별법 하나만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짜리 국회를 열어 더 화제가 됐다. 이른바 ‘원 포인트 국회’였다. ICL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뜻한다.

장학은 ‘교육+복지’ 하이브리드

ICL과 관련해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례가 유명하다. 그는 학비 비싸기로 유명한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면서 학자금으로 4만3000달러를 빌렸다. 그의 동창 미셸 여사도 4만1000달러를 빌렸다. 이를 모두 상환한 것은 오바마가 43세 때. 대선 주자로 주목받으면서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많이 팔린 덕분이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넉넉지 못한 집에서 자란 오바마가 충분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상당히 제한됐을 것 같다. 미국이 오늘날 흑인 대통령을 갖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교육기회 제공은 가장 호흡이 길고 근본적인 복지정책이다. 장학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선인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대학등록금 부담이 만만찮다. 재학생의 경우 25, 26일 이틀 만에 7만7000명이 ICL을 신청했다. 폭발적 반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도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우선 연 5.7% 금리는 너무 높다. 국고채 금리(현재 4.2%)보다 낮출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손해가 나겠지만 세금은 이런 데 쓰는 것이다. 금리를 안 낮추면 “빚 때문에 아이 못 낳겠다”는 부부가 생겨난다.

떼일 비율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학자금대출의 경우 1만3800명이 채무불이행자다. 사람의 가능성만 보고 대출하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보다 대손비율이 높은 것은 어쩔 수 없다. ICL의 경우 소득이 발생해야 변제의무가 생기고, 대출에서 회수까지 기간도 길어지므로(최장 25년) 대손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렇지만 재능 있는 젊은이가 실력을 갖추고 사회에 진출해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하며 자긍심을 갖고 사는 쪽이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전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는 효율의 측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교육과 기회의 균등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요건이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효율을 뛰어넘는 본질적 가치다.

그렇다 해도 대출회수 장치는 더 강화돼야 한다. 정부는 ICL 대출 사실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거나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을 경우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신용불량등록, 추심도 고려해야

소득은 없지만 재산이 있는 경우에도 변제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과세자료와 연계하면 전혀 어렵지 않다. 악성 채무불이행자는 추심회사에 해당 채권을 팔아넘기고, 신용불량자로 등록해야 한다. 해외여행 기록이 있는지 살피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변제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능력이 생기면 반드시 갚는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굳건히 정착돼야 한다.

야박하게 들리는가. 떼인 돈이 아까워서 악착같이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공돈’ ‘세금 낭비’ 소리가 나오고 ICL 재원 확충이 점점 힘들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다음 세대의 재능 있는 젊은이가 못 배우는 바람에 빈곤 탈출에 실패할 개연성이 커진다. 현 세대의 게으름이나 부적절한 관용이 미래 세대의 꿈을 꺾는 일을 막자는 거다.

장학은 우리 마음의 관대함에 기초하고 있다. 그 관대함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야박함이 필요한 때도 있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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