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외신 회견 발언과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영국 BBC방송에 한 발언은 몇 가지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연내 정상회담 가능’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김 대변인이 대통령 발언이라고 국내 언론에 전한 내용은 한발 물러선 원론적 표현으로 읽힌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7500만 민족의 삶과 직결된 중대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이슈다. 이런 사안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의 언급은 토씨 하나라도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뉘앙스가 다르게 전달된다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든 좋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는 어제 “과거처럼 일회성으로, 정치적 이벤트로 회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근원적 반성에서 출발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수시로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대통령 발언의 진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당초 발언이 세계로 알려진 이상, 설사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 하더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수시로 만나’라는 부연설명도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추진 상황을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국민이 모르는 ‘막후(幕後)’가 많을수록 정부의 부담이 오히려 커질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대해 국민은 과거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회담 때보다 냉정하게 그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10년 좌파 정권의 대북정책에 심대한 문제의식을 느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국민은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환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1차의 6·15선언이나 2차의 10·4선언이 내포한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크게 실망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회담을 한다면 반드시 ‘북핵 해결’을 전제로 해야 하고, 이를 비롯해 남북 간에 걸린 본질적인 현안들을 푸는 데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는 회담이어야 한다. 만약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상회담 분위기가 만드는 플러스 효과보다 그 결과에 따른 마이너스 측면이 더 클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이 이번에 또다시 평양으로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불만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 내용의 중요성이 더하다. 정부가 회담 성사를 우선시해 부실하고 불리한 회담을 감수한다면 그 후유증이 오히려 정부를 궁지로 몰 우려마저 없지 않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냉철해야 할 이유는 이처럼 많다.
혹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국내의 국면 전환을 위한 계기로 삼으려는 유혹을 느낀다면 그런 생각은 적중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결과를 창출하는 회담이 아니고는 과거 남북정상회담이 불러일으킨 일시적 열기도 기대하기 힘들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많이 냉정해졌음을 정부도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