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조선의 순종은 왕실 소장의 각종 도서를 한데 모아 규장각 도서로 통합하도록 했다. 규장각은 정조가 1776년 즉위하자마자 창건한 기구로 역대 군주의 유품과 각종 서책을 보관했다. 정조는 1782년 강화도에 별도로 외(外)규장각을 설치했다.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200여 책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탈해 갔는데,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다.
▷1907년 전국의 왕실 도서를 통합했을 때 장서 수는 10만여 권에 이르렀다. ‘학문의 나라’ 조선다운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 책들은 ‘제실도서(帝室圖書)’로 명명됐다. 그러나 규장각은 1910년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과 함께 폐지되고 제실도서는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다가 1923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됐다. 이 가운데 과거에 오대산 사고(史庫)에 보관됐던 조선왕조실록은 일본 도쿄대로 반출된 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됐다. 나라가 망하면서 우리의 귀중한 국가 자료들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됐고 일부는 외국으로 반출됐던 것이다.
▷제실도서 일부가 일본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교 경전과 의학서적 등 38종 375책에 이른다. 조선 임금이 신하들과 정기적으로 유학 강의를 듣던 행사인 ‘경연(經筵)’에 쓰였던 서적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궁내청은 일본의 왕실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으로 사실상 일본 왕실이 이 책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이외에 일본 왕실은 조선왕조의궤 등 79종 269책을 소장하고 있음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제실도서와 경연 서적이 어떻게 해서 일본 왕실로 유출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가적 혼란 속에서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들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청구권이 일단 소멸됐기 때문이다. 책들이 불법으로 유출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반환받기가 더 힘들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일본 정부가 올해 강제병합 100년을 계기로 과거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스스로 우리 측에 돌려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반환을 성사시켜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