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성매매업소 및 도박장과 경찰관의 유착비리를 끊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은행계좌 명세를 영장 없이 볼 수 있게 사전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사생활의 과도한 침해”라는 반발이 나오는 모양이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숨은 비리인 교육비리 척결에 전념하라”고 지시하고 인사 청탁, 공사비와 교비(校費) 횡령 근절을 위한 수사에 나섰다. 잇단 교육계 뇌물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친 서울시교육청은 비리 고발자에게 최고 1억 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작년 말 공무원의 16%가 지난 5년 동안 예산 7억 원을 빼돌린 충남 홍성군 비리가 드러난 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결탁한 토착비리 척결을 지시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과제를 달성하고 선진화를 향해 달려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후진국형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격(國格)을 훼손하는 일이다. 과거 박봉에 시달리던 시대와 달리 요즘 공무원들은 실직 걱정도 없고, 대우는 국민이 부러워할 정도다. 그럼에도 시민과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부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봐주고 챙기는’ 행태는 여전하다.
교육계에도 경제수준이 높은 지역의 교장직이나 승진의 지름길인 교육청 장학사 자리를 놓고 상납이 끊이지 않는다. 돈을 주고 승진한 사람들은 ‘투자 원금’을 건지려고 다시 뇌물을 받는 악순환 구조다. 이런 교육비리가 강성 전교조에 투쟁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에서 경찰관의 개인 휴대전화 기록을 조사하겠다는 다소 극단적인 조치가 나온 것도 경찰관과 유해업소의 유착이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통화나 계좌 명세에 대한 영장 없는 조사는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지나친 수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직자 임명 때도 계좌추적 동의서를 받아 검증을 한다. 대민(對民) 현장의 경찰과 세무, 교육 공무원들이 받는 유착과 부패의 유혹은 고위 공직자 못지않다.
국민과 사정기관이 주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는 있겠지만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휴대전화가 아니더라도 업주와 접촉할 방법은 많다. 감사관실에서 들여다보는 줄 알면서 예금계좌로 뇌물을 받는 경찰관도 없을 것이다. 국민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해 충격요법을 내놓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조치가 아니길 바란다.
무엇보다 일선 경찰과 교사, 공무원들의 투철한 공복(公僕)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아빠는 경찰이다” “우리 엄마는 교사다”라고 자녀들이 자랑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치열한 자정(自淨)이 요구된다. 경찰관이 아침에 떳떳하게 정복을 입고 출근하는 운동도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돈을 주고 일을 해결하려는 민원인과 학부모도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