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11월 30일 이른바 화폐개혁을 한 뒤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화폐개혁 당시 쌀 1kg을 2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400∼600원으로 20∼30배나 폭등했다. 화폐가치도 폭락해 당초 북한 돈 30원에 1달러를 교환해 주던 것이 지금은 500원까지 떨어졌다.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함흥 청진 남포 등지에선 기관원들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충돌과 살해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김정일을 거론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분위기라니 체제의 안정마저 흔들리는 상황인 듯하다. 북한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해임하고, 중단시켰던 시장거래를 다시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성난 민심을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다. 내부 반발로 인한 급변사태나 대남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은 대화를 제의하고 남한 옥수수를 받겠다고 하면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까지 해안포를 쏴 우리의 대응태세를 떠보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안보상황에 군사적 정치적으로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긴밀한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그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 육군의 남한 투입이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한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은 미국의 진의를 확인할 수 없다.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할 경우 미군의 증파가 늦어진다면 우리의 희생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북한은 지금 개성공단 임금인상과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등 경협사업을 통한 외화 확보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외부 투자유치를 위한 국가개발은행 설치와 대미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것 역시 핵개발로 자초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전술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핵개발을 포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지 못하면 북한의 경제적 사회적 혼란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적당히 위기를 모면하려는 김정일 체제를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북한에 핵 포기와 개혁 개방을 거듭 촉구하고, 국제사회의 지원과 남한과의 교류협력만이 저들의 유일한 살길임을 깨우쳐주는 자리가 돼야 한다. 이 대목에서도 한미 공조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