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스케이트’라면 얼음 지치는 것으로 알지만 그만해도 ‘호랑이 담배 먹든 녯날’ 이십 오년 전의 일이다. 이 때에는 ‘스케이트’가 무엇인지 얼음지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든 을사년이다. 그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 ‘찔레트’ 씨의 가구를 판매할 때에 그저 준대도 무엇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아모도 사는 사람이 업는 물건이었으니….” ―동아일보 1929년 1월 1일자》 이 땅에 서양식 스케이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94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국에 머물렀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경복궁 향원정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다고 기록했다.
한국인이 언제 처음으로 서양식 스케이트를 탔는지에 대한 기록은 동아일보 1929년 신년호 특집 ‘조선 체육계의 과거 10년 회고’에 등장한다. 1904년 인천에 살던 현동순 씨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 질레트 씨 내외의 스케이트를 15전에 구입했다는 것. 이 기사는 ‘몃 번 지처 보앗스나 나아가지를 안해 고심한 끄테 필경(畢竟)에는 성공을 하얏다… 이것이 조선에 ‘스케이트’를 신어대고 얼음 지첫다는 것의 시초이엇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스케이팅은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가 됐다. 동아일보는 1923년 1월 12일자에 ‘평양 대동강에서 동아일보 평양지국이 빙상운동대회를 연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즈음 평양 대동강에는 매일 수백의 청년들이 ‘스켓트’로써 어름 우의 운동을 하는대 본사 평양지국에서는 이 긔회를 리용하야 청년의 장쾌한 긔상을 장려하기 위하야 오는 이십일 오전 아홉시 대동강 상에서 빙상운동대회를 주최하기로 하얏는대….”
1927년은 스피드스케이팅 위주였던 조선에 피겨스케이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해다. 이일, 연학년 등 5, 6명이 모여 ‘서울 피겨스케이팅 구락부’를 조직했다. 서울스케잇팅클럽에서도 스피드부 외에 피겨부를 신설하는 등 피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당시 피겨부 부원 중에 여자는 없었으나 이들은 페어, 아이스댄싱 등도 시도했다.
스케이트가 보급되면서 한국 빙상 선수들의 실력도 급성장했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제4회 겨울올림픽에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단 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다. 동아일보는 ‘은반의 우리 자랑 분설(粉雪) 맞으며 활약!’(1936년 2월 13일) 등의 기사로 이들의 소식을 전했다. 당시 김정연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종목에서 18분2초의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1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한국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다. 이에 힘입어 16∼18회 겨울올림픽에서는 3회 연속 세계 10위권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불모지였던 피겨스케이팅에도 김연아 선수가 등장해 여러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올리며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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