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과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이 열린 어제 북한의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발표한 성명이 가관이다. 이들은 “남측의 반(反)공화국(북한) 체제 전복 시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며 “반공화국 광신자들을 짓뭉개버리겠다”고 외쳤다. 북한이 지난달 15일 우리가 주기로 한 옥수수 1만 t을 받겠다고 밝힌 직후 국방위원회 명의로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날려 보내기 위한 보복성전’을 예고한 것과 닮은 강온(强穩)전술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우리 정부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만들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았지만 이번에는 핵 폐기 요구,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對北) 전단 등을 시비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행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같은 날 상반된 방향성을 드러내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은 그의 권력에 문제가 생겼거나 최소한 북한의 대남정책이 우왕좌왕한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강경파 군부와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노리고 대화를 원하는 온건세력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2008년 여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위기에 빠졌다. 올 들어서는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혼란이 심각하다. 우리가 북한의 상황 변화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대응이다. 지금도 매년 2000여 명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몰려온다. 북한의 위기가 극심해져 수만, 수십만 명의 탈북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우려를 체제전복 책동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도둑이 몽둥이를 드는 격이다.
북한이 체제전복 시도 사례로 열거한 상황도 귀책사유가 북한에 있다. 북한은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내가 할 일은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고 밀가루빵과 칼제비국(칼국수)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1일자 노동신문 보도는 뭔가. 북한 당국자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빵과 자유를 찾아 나선 탈북자들을 욕할 게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북한이 정상 국가로 탈바꿈한다면 세계의 어느 누가 북한을 위험집단으로 보겠는가. 남한에 책임을 떠넘기는 억지 공세로는 내부 혼란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