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농민단체가 3일 농협 조합장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초등학생들에게 곡괭이로 내리찍는 퍼포먼스를 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농민단체 회원들은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학생 4명에게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들은 거절하는 아이들에게 곡괭이를 손에 쥐여주며 다시 권해 몇 차례씩 허수아비를 내리찍게 했다. 허수아비에는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한 어린이는 “징그럽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끔찍한 사실은 현장을 목격한 시민의 제보와 그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밝혀졌다.
이 지역 5개 농협과 농민단체는 벼 수매가 인상 문제를 놓고 지난해 11월부터 갈등을 빚었다. 농협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40kg짜리 한 가마에 4만4000원 이상으로는 매입하지 않겠다고 했고, 농민단체는 4만6000원 이상을 요구했다. 농민단체는 이날 농협의 조합장을 상징하는 허수아비 5개를 만들어 곡괭이로 찍는 퍼포먼스를 한 뒤 초등학생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어른들이 10세 안팎의 아이들에게 흉기로 허수아비를 내리찍는 행동을 시킨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자신들의 아들딸이었어도 이런 행동을 하라고 했을까. 설혹 어른들은 집회시위를 하더라도 청소년에게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모습은 보이지 못할지언정 아이들에게 흉포한 난동을 가르치다니 세상이 어디까지 타락할 것인지 기가 막힌다. 이런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이 나라, 이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걱정스럽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동원해 물의를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위험한 폭력 현장에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도 모자라 유아를 태운 유모차까지 끌고 나왔다. 촛불시위 막바지엔 조계사로 숨어든 수배자들이 초등생들을 부추겨 이명박 대통령을 거칠게 욕하는 내용의 방명록을 쓰게 하고, 이 장면을 인터넷에 올렸다. 2005년엔 전북 임실의 전교조 교사가 좌파단체의 빨치산 추모제에 중학생 180여 명을 데리고 참석해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편이 갈리고, 사회적으로 이익 갈등이 심하다 해도 어른이 후세들에게 가르치지 말아야 할 인간의 길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