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아이티에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병력을 곧 파견할 예정이다. 아이티는 지난번 지진 참사로 사망자가 이미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재민 150만 명을 비롯해 약 300만 명이 원조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로와 전기 등 기간시설도 거의 다 파괴돼 구호품의 배급이 지연되면서 주민의 불만도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각국이 앞 다퉈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만 아이티 재건에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유엔은 추산한다.
아이티의 참상을 보고 국제사회는 복구와 재건을 위해 발 벗고 나섰는데 정부가 이에 동참하기로 한 결정은 기여외교 강화라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정부는 1월 29일 파견한 정부 합동실사단의 현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무회의에서 파병안을 확정해 국회 동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파병 부대는 공병 위주의 250명 이내 규모로 구성하며 주둔지 방어를 위한 해병대와 의료병력도 포함한다.
정부가 신속히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한 것은 유엔의 요청 때문이다.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해 주요 지역은 아직도 치안은 물론 주민의 기본적인 생존 여건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우리 군은 아이티 정부 및 유엔 아이티 안정화군(MINUSTAH) 사령부와 협력해 아이티 재건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아프간 파병 결정에 이어 아이티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키로 한 것을 계기로 우리의 평화유지활동 체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여외교의 일부로서 해외 군사활동, 특히 평화유지활동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으로 인종갈등 종교갈등 국경분쟁이 빈번해지면서 국제적으로 PKO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는 추세다. 한국은 이미 이라크 파병의 경험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여론의 역풍을 무릅쓰고 국익이라는 관점을 앞세워 이파크 파병을 관철시켰다. 당시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3000명을 파병해 이라크 재건에 기여하고 국격을 크게 높였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평화유지활동 참여를 정치적 판단에 따른 간헐적 활동이 아니라 정상적 평화외교활동의 일부로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 신속하고 효율적인 평화재건 기여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최근 유엔PKO 참여법이 통과됨으로써 유엔 주도 평화유지활동의 경우 좀 더 신속한 파병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유엔PKO 참여법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다국적군 활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프간 파병안은 세종시 등 국내 정치 현안에 밀리고 여야의 극심한 시각차로 국회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파병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파병 일정의 지연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국제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법적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활한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미 국방부가 최근 발표한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DR)는 21세기 국제안보의 핵심 위협요인을 다양하고 복합적인 하이브리드 위협으로 규정했다. 하이브리드 위협은 대규모 국가 대 국가 전쟁보다는 불특정 다차원 위협을 일컫는 말로서 전면전과 비정규전, 테러 및 범죄활동까지 전쟁 수단으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아프간이나 아이티처럼 취약하거나 실패한 국가를 국제사회가 방치할 경우 국제안보 위협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과 아이티 파병이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 가운데 이뤄져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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